본문 바로가기
얄팍해요~문화생활/영화

4년째 넘버링 162. 밀정

by 와옹 2016. 9. 13.

2016년 / 140분
항일 느와르, 한국

감독  김지운
출연  송강호(이정출 역), 공유(김지운 역), 한지민, 엄태구, 신성록, 츠루미 신고 + 박희순, 이병헌


한마디로... : 애국과 매국, 변절과 밀정의 경계에 선 남자 이야기

 

(이제는 이 말 하기도 민망한데...)
이 얼마만의 극장 나들이인지! ㅋㅋㅋ
드디어 밀정을 봤다. 
요즘 박보검이 멋있다 했는데 밀정을 보니 공유가 또 멋있네!
아아.. 남자는 연령별로 다 멋있고 난리다. 
하여간 이 영화, 길기도 꽤 긴데 온갖 스타일의 짬뽕 같은 걸 보여준다. 그런데 그게 결국엔 괜찮다! 

영화 초반엔 지붕을 넘나드는 액션의 리얼함과 특별출연 박희순이 시선을 잡더니
그 다음엔 내 사랑 <상해탄(홍콩느와르 시절 주윤발 드라마)> 풍의 항일 느와르가 스타일리쉬하게 펼쳐져서 웃음이 났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인데... 하면서도 이런 게 우리나라에서도 나오는구나 꺄꺄- 했다. 송강호와 공유가 서로를 이용하려는 밀당에서는 <의형제>의 송강호랑 강동원이 떠오른 것도 사실. 그러던 영화는 갑자기 <설국열차><암살>을 짬뽕한 듯한 긴박감을 선사하더니 <남영동1984>의 고문씬과 <변호인>의 법정씬 느낌을 휘뚜루마뚜루 내고 결말로 내닫는다. 스토리는 듬성듬성 끊어져서 설명이 너무 비거나 종종 나열에 그치는데, <암살>이 그런 구멍을 빠른 액션과 설명대사로 풀었다면 이 영화는 정서로 푼다. 감정이 아니라 정서다. 감정선은 뚝뚝 김밥 썰리듯 연결되는데 장면마다 긴장감을 주구장창 이어가는 정서라니. 1920년대의 음악 세곡이 아이러니하고도 처연한 그 정서를 만들어냈다면, 그걸 꽉꽉 채우고 다져 이야기의 구멍을 메운 1등공신은 단언컨대;; 배우들이다. 

송강호가 맡은 이정출은(실존인물 '황옥'이 모델) 감정기복이 별로 없는 역할이다. 있어도 밖으로 분출하는 게 아닌 안으로 끓여대는 감정이라, 절규보단 오열이고 분노보단 울분이고 폭발하는 화산재가 아닌 흘러내리는 마그마다. 그리고 이것이 영화 전반에 일관되게 흐르는 정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진득하고 끈끈한 정서는 아니고... 오히려 가벼울 만치 건조한 편이다. 이런 톤에서 그런 연기를 끌어올린 송강호는 정말 감탄, 감탄. 원체 폭발보다는 층층이 쌓인 왼갖 감정에 능한 배우이긴 해도. 하여간 참 좋았다. 

공유는 내겐 그닥 어필을 못한 배우였는데 <밀정> 속에서의 존재감은 확실했다. 김우진(실존인물 '김시현'이 모델)은 의열단의 대장급인데 근사한 수트발 코트자락 날리며 오로지 멋짐 하나로, 센 놈이란 포스를 풍긴다 ㅋㅋㅋ. 이걸로 만족하며 보고 있는데, 막판에 말없는 표정이나 격한 감정을 무척 자연스럽게 연기해서 놀랐다. 좋은 연기를 하는 배우였구나, 공유... 우왕, 공배우도 즨짜 좋았다. (그러고 보면 송강호랑 하면 다들 좋았던 듯...?)

그러나 이런 공유를 단박에 오징어 만든 배우가 있었으니 바로 특별출연222에 빛나는 이병헌이다. (특별출연111의 박희순도 주인공이 벌써 죽냐는 느낌으로 번개처럼 연기하고 사라졌지만,) 이병헌은 우와.. 진짜 윗대가리!라는 느낌으로 짧은 등장마다 무게중심을 딱딱 잡아주고 가는데 정말 인정 안할 수 없는 매력과 포스를 뿜는다. (이 역할의 모델이 약산 김원봉, <암살>에서 조승우가 특별출연했던 그 인물이라지. 둘 다 이 역할로 안 나왔으면 어쩔 뻔!?)
그러나, 벗뜨, 맨마지막의 나레이션은 그의 목소리가 아닌 편이 좋았을 텐데.... 자꾸 단언컨대 광고도 떠오르고 인간적으로도 저런 대사를 치면 안 될 것 같더라고. 실패하더라도 그걸 딛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 뭐 이런 대사를. 음 실패의 반대는 성공인데 혹시 감독의 고도의 디스? -_-a 무엇보다 이미 충분히 전달된 메시지를 끝까지 주입할 필요는 없었네용. 

(신성록도 나온다. 근데 의열단에서 빼입은 건 간부급 뿐인가? 그런 거요?) 


일본 배우 츠루미 신고는 평소 일드에서 자주 보던 아저씬데, 어떤 생각으로 이런 역할을 맡았는지 조금 궁금했다. 하긴, 여기선 일본군이나 일본인이 그리 나쁘게 그려지진 않았지만... 이 영화에선 나쁜 놈은 죄다 한국인이다. 일본인과 제국주의는 배경에 있지만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진 않는다. 직접 손에 피를 묻히고 배신하고 권력에 빌붙는 한국인들이 몹쓸 놈들이다. 못돼 처먹었고 죽어 마땅하다. 과한 따귀와 히스테리로 깊은 인상을 남긴 엄태구의 하시모토 같은 캐릭터가 그렇다. 그에 비하면 츠루미 신고가 연기한 히가시 부장으로 대변되는 일본인과 일본제국주의는 딱 한번 독한 지시를 할 뿐 아무 악행도 저지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 빌붙은 몹쓸 조선인들은 전부 일어로 말한다. '일본어를 쓰는 자들'이 나쁜 자들이라는 정서가 형성되고, 덕분에 일본제국주의는 하나의 부조리한 사회상처럼 기능한다. 의열단은 부정부패를 때려잡듯이 일본을 때려잡으려 한다. 일본인이 봐도 괜찮을 보편적인 정서로.. 이 영화가 영리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이다. 

 (이런 느낌으루다... 문자 그대로 일본이 배후에!! ㅋㅋ)

어쨌든 그렇게 이어진 독립운동의 결말(?)은 <암살>보다 희망적이다. 죽으러 돌진한다 해도 희망적이다. 우리가 이미 독립을 얻어낸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회색분자가 척결의 대상에서 포섭의 대상으로 그려져서 더 그렇다. 친일파가 조금도 숙청되지 않은 현실에서 <암살>이 보여준 응징은 극장 안에서의 꿈일 뿐이지만 <밀정>의 방식은 한줄기 희망을 느끼게 해주기에... 그래서 영화의 여운은 더 길고도 은근하다. 

짜릿함보단 뭉근한 연민으로 뭉쳐진 영화.
감독 말로는 차가운 느와르. 
내 생각엔 부드럽고 온건한 느와르. (전기밥솥의 보온 모드 같은 느낌...?)
배우들의 연기가 하나같이 좋았던 영화, <밀정> 강추욧!

 

더보기

 

연기 잘해서 짜증났던 엄태구(하시모토 역)와...

전지현과는 또다르게 강렬했던 한지민. (아니 근데 이 모습은 잠깐 나옴 속지 마셈 ㅋ)

가만 보면 의미 없는 그냥 단체사진... (좋돠ㅎㅎ)

 

이 장면도 참 의미 없이 멋은 있었다. ㅋㅋ 굳이 빗속에서 담배 무는 흡연자.

 

영어 포스터가 더 멋진 <밀정>. 한국판 포스터는 어째 전부 구리당당 숭당당.

 

의열단과 황옥 경부 폭탄 사건에 대한 설민석 강의는 이쪽을 꾹~! https://www.youtube.com/watch?v=tL838GyVS6M
영화를 안 본 사람들은 스포가 될 수도 있음. 미리 알면 조금 싱거울 것도 같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