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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해요~문화생활/영화

재작년부터 넘버링 115. 암살

by 와옹 2015. 7. 26.

2015년 / 139분
한국

감독  최동훈
출연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조진웅, 오달수, 이경영 등등등
특별출연  조승우, 김해숙 

한마디로... : 일본군 수장과 친일파를 암살하려는 독립군 vs. 막으려는 밀정 vs. 사이에 낀 청부업자의 활극

 

오랜만의 극장 나들이. 홍차양과 함께 했다.
그다지 큰 기대감이 없는 감독과 작품이었지만, 2시간 반 짜리가 25분으로 느껴진다는 홍차양 주변의 믿지 못할 제보에 솔깃해졌고 다 보고나니 25분은 개뻥이지만 1시간 쯤은 빼줘도 좋을 만한 체감시간을 지닌 영화더라.

캐릭터와 비주얼로 풀어낸 스타일은 <놈놈놈><도둑들>을 연상시킨다. 색감이나 분위기는 <원스어폰어타임~>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감칠맛은 홍콩느와르의 걸작들을 떠올리게 한다. 

좀 더 묵직한 감동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이 정도 나온 것도 놀랍다. 왜냐면 이 영화, 서사가 띄엄띄엄하거든. 너무 많아서 생략됐다고 해야하나? 지금 벌어지는 '사건'을 밀착취재하는 다큐3일 같은 관점으로 흘러간다. 온갖 사람들이 채 설명되지 않은 채 쏟아져나오고 그들이 벌이는 '암살 '작전에 대한 사명감이나 의미 부여도 널리 통용되는 밑그림 수준이고, 한마디로 그 시대의 특수성에 기대서 그랬다 치고 넘어가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캐릭터 자체는 (다큐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확실하게 잡고 있으며, 이래서 이들이 만나고 저래서 저들이 한 공간에 있게 되는 전개상의 개연성은 절묘하게 아귀가 맞는다. 
하지만 인물이 우수수 등장만 하는 도입부의 난잡한 시간 배열은 나를 시니컬하게 만들었으니..
이야기의 중요한 축이 될 인물들의 출신성분과 전사(前史)는 말로 휙휙 지나갈 뿐이고
그나마 여주인공에게 그 온갖 설정들이 몰빵되었으며, 이정재에겐 생략의 묘(?)를, 하정우에겐 막판 끼워넣기 공법을 발휘해 이들이 메인이라고 강조할 뿐이다. 드라마틱한 이들의 개인사는 거의 다 말로만 등장한다.

그런데도 재미있는 게 충격이었다. 
캐릭터와 캐릭터간 케미와, 장면의 재미만으로 굵직한 이야기축을 감정선을 다져나가다니. 
배우들의 연기력과 좋은 대사, 깨알같은 연출력, 그리고 허를 치는 타이밍 감각. 이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영화가, 찡하기도 한 영화가 가능한 거였다. 산만한데 재미있다.

보면서 중국에서 엄청 좋아하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 빵빵 터지고 스타일리쉬하다. 
시대배경과 사명감과 기구한 각자의 히스토리는 그냥 그 시대의 기본적인 이미지(일본 나쁨 독립 만세)에 기댈 뿐이라 가슴 절절한 깊이는 없지만 충분히 재미를 느낄만큼 이해는 된다.  

스토리텔링은 재미를 강화시키는 것이지 재미 그 자체는 아니구나 느끼게 한 영화. 
재미는 디테일, 사건에 반응하는 인물들의 개성과 깨알같은 대사에 있었다. 
그럴싸함. 아슬아슬 조마조마함. 주위에서 본 듯한 리얼함. 그동안 못본 신선함. 

천만 넘을 게 확실한 영화! 새 기록을 쓰지 않을까 싶은 게, 나도 한번 더 볼 마음이 든다.
하정우 짱 멋짐! 조승우도 매력 안 죽었음. 이정재 악역 잘 어울리고 전지현 미모 액션 몰입도 다 좋았음. 
조진웅 말할 것 없이 좋았고 다작하는 오달수 아저씨 간만에 잘 어울렸고 못지않게 다작하는 이경영 아저씨는 약간 미생의 전무님 모습이 나왔지만^^ 존재감 충분, 존재감하면 김해숙 아줌마도 짧고 굵었고... 등등등. 
아, 암살3인 중 하나인 최덕문 배우도 평범한(?) 인물이었지만 그냥 그 시절 독립군 데려다 놓은 듯이 연기가 자연스럽고 힘있었다. 마스크가 김희원 비슷한데 강렬하기보단 묘하게 인상적이다. 

가만 보면 딜레마 범벅인 영환데, 그 갈등의 순간을 길게 끌고 가지 않는다. 
거의 배우의 응축된 연기로 짧게 치고 넘어가서, 이 배우들의 대단한 면면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곳곳에 덕지덕지 발려있다. 
이 영화의 숨은 감정선과 사연들을 전부 끌어낸다면 미니시리즈도 충분할, 그런 극적인 순간들 투성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죽어나가는데 어찌 짠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백미는 그 모든 캐릭터와 사건을 품은 전지현이 던지는 마지막 대사이고, 비로소 묵직해진다.
이야기의 힘, 서사의 힘이 느껴지는 건 그 한순간이다. 그 장면이 없었다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지금보다 박했을지 모른다. (그 전까지는 배우 보는 맛, 화면 보는 맛이 주된 장점이기에 여운은 없는..) 그런 의미에서 감독이 참 영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

그래서 결론은 하정우 짱. (아니 여운 어쩌고 하더니!)
남자는 수트발. <군도> 보고 놀란 하정우 제대로 치유됨. (군도에서 열연을 안 했다는 건 아니지만~ 알쟈나~)


꼬랑지>
이 영화를 반 이상 졸며 보셨다는 어무이 왈,
소싯적에 독립군 영화 많이 봐서 뻔한 얘긴데 뭐 그렇게 좋진 않았어~라고.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