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투더스카이의 베스트앨범을 샀다.
몇년만에, 가요계에 이바지 좀 해보고자 이 CD를 샀다가 윈도우가 박살났다.
흐뭇한 마음으로 저 CD를 밀어넣자마자 '인스톨' 메시지가 뜨더라. 인스톨은 무슨! 하고 No를 선택했더니, 윈도우가 그 즉시 먹통이 되었다. 아무런 메뉴도 안뜨고 오른클릭, 컨트롤+알트+델리트도 안 먹게 된 것이다.
하도 어이가 없고 당황해서 결국 (안전모드 부팅같은건 생각도 안나길래) 돈 주고 고쳤다. CD값의 2배를 윈도우 수리비로 물었다. 제대로 열받았다.
이 CD는 열어본 순간부터 기분이 별로 안좋았다.
겉표지에 스티커로 '불법복제하면 안되고~ 그럴 경우 컴퓨터에 심각한 오류를 일으킬 수 있고~ 무단으로 사용하지 말고~ 일부 MP3재생기기나 컴에서 작동이 안될 수 있다~등등등'의 이야기가 깨알같이 씌여있었다. 대충 보고 버렸다가, 나중에 쓰레기통에서 다시 꺼내 읽었다는 거... 그러나, 어디에도 '컴퓨터에 넣으면 치명적인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언급은 없었다. 망할...(또 열 오르네)
그 뿐이냐? CD 안쪽에는 예쁘장한 부클릿-이라고 해봐야 가사와 곡명이 씌인 종이-랑 함께 이런 글이 들어있었다.
나도 창작하는 사람으로써 원칙적으로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둑이 정해주는 빵 원료 값이든 뭐든, 그것조차도 못받는 창작자가 수두룩한 환경에, 이건 마치 연봉 6천만원의 대기업 노조가 임금파업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것을 지향하는게 좀 더 좋은 세상이라는 데에는 동의해도)
더구나, 돈 주고 CD를 산 소비자까지 잠정적으로 도둑 취급하는 게 아닌가?
좋아, 거기까진 좋다. 도둑 취급을 하든 비난을 하든 시디 속에 내 주장 좀 끼워 판다고 뭐랄 건 없으니까.
그런데 왜,
남의 컴퓨터를 부수냔 말이다!!!!!
컴퓨터에 넣자마자 인스톨 메시지가 뜨고, '예'를 하던 '아니오'를 하던 마찬가지로 윈도우가 망가졌다.
이게 무슨 짓이냔 말이다. '일부 재생이 안되는 컴퓨터가 있다'고? 그럼 재생만 안될 것이지, 왜 윈도우를 공격하느냔 말이야! 왜 내가, 일부러 돈 주고 시디를 사서, (그동안 도둑질 하셨죠?)라는 뉘앙스의 글을 읽고 윈도우까지 망가져 시디 값의 두배를 수리비로 지불해야 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SETTEC사의 보안기술이란 사용자를 도둑 취급하는 것인가?
단지, 컴퓨터에 시디를 넣었다는 이유로 내 컴퓨터를 망가뜨릴 권리가 그들에게 있는가?
대체 누구를 위한 노래인데? 사람들이 널리 듣게 하기 위해 만드는 창작물이 아니냔 말이다.
그렇다면, 내 수중에 돈이 안 들어와도 많은 사람들이 듣고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어느정도 창작의 보람과 기쁨은 있는 법이다. 노래를 단순히 금전적인 측면에서, 만든 사람의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가공할 테러를 저지를 수 있는거라고 생각한다. (그래, 이건 테러다, 내 입장에선) 최소한, 시디를 넣었을 때, 이 컴퓨터에선 재생이 안된다던가, 인스톨을 하면 재생이 되게끔 한다던가, 또는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등등의 경고를 대문짝만하게 띄웠다면, 테러라고 표현하진 않았을거다. SETTEC사가 한 짓이 바이러스 퍼뜨리는 인간들과 다를게 뭐가 있는가? 저작권 보호라는 미명 하에 결과적으로는 같은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운받은 음원이 일부 MP3로 옮겨지지않는 DRM 기술은, 이것에 비하면 아주 애교였다.
그때도 MP3를 이용하지 못하게 할거면 돈을 왜 받느냐고 흥분했는데, 그래서 이런거 저런거 다 귀찮아서 정품 시디의 세계로 돌아와보려 한건데, 이따위로 나오면 다시는 가요 CD 안 산다.
CDP에 넣어서 들을 수는 있으나, 아이팟엔 넣을 수 없으니 자주는 못 들을 거다.
그것은 플라이 투더 스카이에게 궁극적으로 이득일까 손해일까?
분명한 건, 나는 앞으로 플라이 투더 스카이를 볼 때마다 안좋은 기억을 떠올릴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mp3가 내 주력 오디오 기기인 한, 가요CD는 사지 않을 거다, 절대로.
좋겠구나 음악하는 사람들은. 다운로드 로열티를 받고도 욕을 하니.
우리 애니메이션 하는 사람들은 불법으로 다운로드해도 욕 안한다. 오히려 감사하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라도 많이만 봐주면 좋겠다고.
이미 활성화된 음악시장까지 기준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불법복제를 규제하는 데 소비자를 죄인 취급하는 마인드는 기본적으로 예술을 교감이 아닌 소유물로 보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당신들에게 그럴 권리는 없음을 말하고싶다. 얼마전에 외국(런던인가?) 거리에서 70억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정상급 바이올린 연주자가 거리 연주를 했으나 아무도 몰라봤다는 해프닝처럼, 예술에 값어치란 건 없다. 상업적인 값어치를 올리고 보호하는게, 예술의 품격을 높이고 보호하는 것인 양 말하지 말아라. 저작권은 분명히 보호되야 하지만, 그 대상이 소비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음원을 도용하고 제 2의 저작을 하고 상업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이들을 벌하되, 그걸 넙죽 받아먹었다고 공범자 취급을 하진 말란 얘기다. 까놓고 말해서, 팔아먹는 이들을 완벽히 차단할 수 없으니까 이용자에게 화살을 돌리는 거 아닌가? 이용자를 욕하기 전에 음악을 쉽게 옮길 수 있는 MP3를 만든 이들을 제어해라. 음원을 도용하고 이득을 챙기는 이들을 제어하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루트를 차단한 후에 제일 마지막에 이용자의 의식을 탓하라. 소비자의 컴퓨터가 망가지건 말건 음원만은 보호하고 말겠다는 쓰레기같은 짓은 하지 말아라. 최소한 '이 음반은 일부 컴퓨터에서 재생이 안되는 정도가 아니라 컴퓨터 시스템을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반품은 안됩니다.'라고 써라.
내가 이렇게 말했더니 우리 어머니 하시는 말씀.
"그렇게 복잡한거 알면 누가 사겠냐?"
아아, 부모님들은 정말 세상을 잘 아신다니까.
이래저래 열받는 오늘.
주말 스케쥴 꼬일 때부터 이상하더라니.
유일하게 평온한 시간인 오늘 하루마저 저놈의 시디가 망쳐놓았다.
함께 산 에디히긴스(청자 리퀘스트 베스트 앨범) 시디는 잘만 복사된다. 덕분에 그것만 계속 듣고있다.
플라이 투더 스카이, 노래는 좋지만 한동안 볼 때마다 울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