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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해요~문화생활/영화

인도영화 삼매경 ① [슬럼독밀리어네어], [신이 맺어준 커플], [내 이름은 칸]

by 와옹 2013. 2. 24.

내 인생 최초의 인도영화 [세 얼간이]를 설날 TV에서 재미나게 보고 호기심에 찾아 본 [신이 맺어준 커플]이 어찌나 내 취향이던지, 꺄꺄거리며 인도영화를 이것저것 찾아보는 중이다.
그러나 3시간 전후의 러닝타임을 막연한 추천만 믿고 보기란 쉽지 않아서, 인도영화의 탈을 쓴 2시간짜리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그 다음으로 골랐다. 대니 보일 감독의 서양 영화지만 원작이 인도 소설이고 배우들이 인도인이니까. 게다가 재미있다는 평이고!

해서 봤는데...
나 이 영화가 왜 이렇게 상을 싹쓸었는지 모르겠네. 드라마가 거의 없는 원작소설을 아주 잘 훌륭하게 각색하긴 했는데... 촬영 좋고 잘 만들긴 했는데... 근데 왜 드라마틱하게 포장한 영화보다 드라마라곤 없었던 원작 쪽이 더 설레일까...? 대체 이건 뭘까?

2008/02/21 - [게으른 책벌레/리뷰라 치고] - 마지막 몇페이지로 이야기가 되다

드라마틱한데도 건조하고, 운명적 사랑을 얘기하는데도 담담하다. 물론 원작 탓이 크다. 원작의 서사가 뚝뚝 끊어지니까. 하지만 그 원작조차도 '인생, 어찌될지 모른다'는 모종의 설레임을 품고 있는데 영화에선 그런게 다 사라진 느낌...? 운명도 개인 의지로 보는 서양다운 시각이랄까.
게다가 마지막에 이건 인도영화예요~라는 듯이 집어넣은 기차역 군무씬은....................... 아아, 아이돌 뮤비도 이것보단 감동적이에요.
아마도 내 취향이겠지만, 논리적으로는 헐리우드식 영화가 훨씬 좋아도, 인도 영화에 스며 있는 (빈민을 미혹하는 판타지라 하더라도) 신비로운 인생의 이야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적시는 것 같다.
 

왜냐면, 우연히 고른 인도영화 [신이 맺어준 커플]이 평소라면 꼬치꼬치 따졌을 -운명으로 얼버무린 여성의 자아 같은- 면면을 지녔는데도 완전 찡했거든...ㅠㅠ 이럴 때 보면 나도 은근 로맨스를 좋아한단 말야... 2시간 40분이나 되는데도 이야기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단 기분으로 두근두근 보았고, 마음은 흡족함으로 넘쳤다. 특유의 춤과 노래 씬도 내 선입견과는 달리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노래를 활용하는 방식과 비슷해서 무리 없었다. 내용이 진전되고 감정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더라.

헐리우드식 드라마가 시간을 들여 감정을 켜켜이 쌓아간다면, 인도영화에는 비약적으로 감정이 상승하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런 대목이 너무 좋다. 뮤지컬이나 춤이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처럼, 별 사건도 없는데 시선과 스침과 얽힘으로 희노애락이 북받치는 순간들이. 다소의 오글거림은 다카라즈카를 섭렵한 나에겐 별 것도 아니었고. ㅋㅋㅋ. 그냥 시를 읊던데 뭐...

어쩌면, 이 영화엔 여성의 정략결혼이나 사회적 억압을 정당화하는 사악한 의도가 깔려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삐딱하게 보기엔 영화가 너무 만족스럽잖아...! 그냥 이야기 자체로 재미있는데 뭐? ㅠㅁㅠ 난 인도에 안 사니까 무책임하게 그냥 재밌다고~~~.
그리하여, 인생의 기묘함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강추. 로맨스를 좋아하면 필견.
 

저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은 샤룩 칸이 인도의 수퍼스타라기에, 마침 그가 주연한 영화 중에 나도 아는 제목이 있어 덥석 문 게 [내 이름은 칸]이다. 2시간 4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외엔 별로 인도영화 같지 않은데, 춤추는 씬이 없어 그런지 조금 길게 느껴졌다. 근데도 재미있다. 인도영화의 스토리텔링이 의외로 아기자기하고 충실해서 길어도 재미있다. 국내 개봉은 30분 정도 잘린 편집판이었다는데 원본이 훨씬 재미있다는 평이다. 레인맨이나 포레스트검프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지만 한 두 장면이 그럴 뿐이고, 이슬람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 9.11 이나 "알라의 가르침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는 감동적이었다. 이 영화를 대표할 대사가 몇개 떠오르는데,

"내 이름은 칸.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에요." 라던가, (칸이 대표적인 무슬림 성姓이란다)
"사람은 딱 두 부류예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그 밖엔 아무것도 없어요." 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무고한 한명의 죽음은 전 인류의 죽음과 같다." 는 코란의 구절 등등...

주인공을 굳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자폐증으로 설정한 것도,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는 일그러진 세상에 던지는 화해의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한다. 매우 좋은 선택이었지만, 이 캐릭터의 지나친 특별함이 영화를 냉정하게 보게 만드는 것도 사실. 영화라는 형식을 빌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토해낸 느낌. 하긴, 그들이 느꼈을 울분을 이 정도로 순화한 게 대단한 걸지도 모르지...

인도 영화를 얼마 안 봤지만, 다소 맹랑한 이야기를 그럴싸하게-리얼하다기 보다는 그렇게 믿고 싶도록 정교하게- 풀어내는 데에 울고 웃고 유쾌할 수 있는 건 특유의 정서 탓인 것 같다. 그 묘한 정서가 있다. "신의 뜻대로" "운명"을 부르짖는 그들만의 낙관주의와 한계가, 쉽게 순응하고 어렵게 거부하는 옛날 사극같은 정서가, 여행자 같은 인생에 대한 관조가... 그냥 내겐 그런 게 느껴졌다.

 

간만에 별점놀이하면...
슬럼독 밀리어네어 ★★★
신이 맺어준 커플   ★★★★☆
내 이름은 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