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인이 국정운영 키워드로 변화,긍정,성과,공유,솔선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 중 '긍정'에서는 부정적 평가에 주춤하지 말고 일을 진행하라며 영어공교육을 예로 든 모양이다. 그리하여 올해 새학기부터는 중고교에서 매주 1시간 이상씩 영어로 영어수업을 강행-말로는 권장-한다고. 인수위 말로는 "7-80%만 영어이고 한국어도 섞어서 수업"한다지만 벌써부터 영어사교육 시장이 후끈 달아올랐다니, 민심에 역주행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하고 어떻게 해야 잘하는지 모른다. 3000시간 들어서 귀가 뚫려야 한다는 둥 주워들은 이론은 많지만 영어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영어를 잘하는 이 당선인이 고매하신 영어학자들과 꿍시렁 끝에 내린 정책에 소인이 어찌 태클을 걸 수 있으리오. 하지만 영어에 실패(?)한 사람이기 때문에 영어공교육이 지나친 긍정의 최면에 빠져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사교육비를 대주던지 영어학원을 전부 없애지 않으면" 영어공교육이 사교육을 더 부채질할 거라는 한 학부모의 말처럼(시사매거진2580), 국내에는 영어학원 이외에 영어를 접할 수 있는 매체나 환경이 거의 없다. (심지어 아리랑TV도 기본형 케이블방송이 아니더라) 그리고 나는 이 정책이 영어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또다른 빈부격차를 양산할지에 앞서서, 대체 왜 우리가 영어를 모국어처럼 가르쳐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왜 우리는 '가능할까'만을 논쟁하고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함구할까? 어제 방송된 시사매거진2580은 (내가 본 중에서는) 처음으로 그 질문을 던진 프로그램이었다. 영어로 수업을 하고 어릴 때부터 영어환경을 접할 수 있는 핀란드나 말레이시아는 영어권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다. 그래서 영어환경이, 지금 우리말 속에 침투해 있는 일본어나 한자 이상으로, 자연스럽게 곳곳에 배어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의 언어잔재를 씻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게다가 중국의 사대주의 어쩌구 하면서 상용화되던 한자마저 서서히 몰아낸 나라가 아닌가? 신문에서 한자가 사라졌을 때 어린 마음에도 조금 서운했지만, 우리말과 글을 드높인다는 취지가 반갑고 기쁘고 뿌듯하기까지 했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당선인과 인수위의 영어공교육 정책은 한글의 퇴행을 부추기는 새로운 언어 사대주의다. 국어따윈 알아서 배우겠지,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미안하다 막말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중인 우리 조카 아린이는 영어조기교육이 정체성과 관련있음을 보여준다. (간만에 예쁜 사진 올렸다 ㅎㅎ) <---매우 똘똘하고 활동적인 아이인데도, 영어와 한국어에 한꺼번에 노출된 아린이는 평균보다 매우 느린 언어발달을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국어만 하던 30개월 무렵까지는 말을 무척 빨리 배웠는데, 영어에 노출이 잦아지게 된 3~5세 무렵은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 얼마나 헷갈렸으면 "엄마, 집에 말 할까 밖에 말 할까?"라고 했을까. 부모는 결국, '집에 말'에 힘을 싣기로 했다. '밖에 말'에 추월당하는 건 시간문제니까;; Free School에 입학한 아린이는 아직도 간간이 의사소통이 안되는 영어를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듣기는 꽤 하는 것 같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영어몰입교육(영어로 영어수업)을 해도 아린이가 Free School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6년간 보다 영어에 훨씬 적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전국적으로 영어환경이 증폭되지 않고서는 학교에서 달랑 몇시간 하는 몰입교육만으로는 어림도 없고, 결국 사교육 시장이 불티날 수밖에 없다는 말씀 되시겠다.
오빠는 아린이가 금세 부모의 영어실력을 뛰어넘을 거라며 그 이유는 "문화를 함께 배우기 때문"이라고 했다. 머지않아 아린이는 설날보다 추수감사절에 대해 할 말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생각의 지도>라는 책에 의하면, 한국이나 일본 부모들은 미국이나 영국 부모들과 가르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버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우리는 흔히 "버스 타고 붕붕~ 어디로 갈까? 쌩쌩 빨리도 달리네~." 하지만 미국 부모들은 "이게 뭐지? 버스야. 이야~ 멋진 바퀴가 네개 달렸네. 창문도 멋지지?"라고 한단다. 버스 하나도 개개의 사물의 조합으로 여기는 서구의 사고방식과 버스를 우리 사는 세상의 일부로 여기는 동양적 사고방식이 어려서부터 습득된다는 것이다. 이런 작은 차이가 쌓여서 자아와 인격이 형성된다. 어려서부터 '우리'란 개념이 익숙한 한국인과 '나'에 익숙한 영어권 사람들은 세상을 대하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에게 두개의 문화를 거의 동시에 받아들이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된다. 어른이 되면 영어를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우니 조기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은, 한국인이 좀 덜 되어도 좋으니 영어권인간이 되라는 말이나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 정도로 영어를 사용할 일이 많은가? 어느 말레이시아인이 "미국에 가서 택시를 잡거나 길을 묻는 건 다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학문이나 취직을 위한) 영어는 다른 문제다"라고 지적한 것처럼, 그렇게까지 공들여서 생활영어를 배워 무엇에 쓸건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후졌다고 비난하지만, 아시아권 유학생들 중에서는 영어능력이 수준급이라고 한다. '생활'이 아닌 '공부'를 위한 영어는 제대로 배웠나보다. 그럼 됐잖아? 미국살이 10년인 오빠는 말한다. "외국사람이 암만 영어 잘해봐야 외국사람이야. 니 조카들도 내이티브에 가까울 뿐이지 내이티브는 될 수 없을거다." 사실 될 필요도 없다고 덧붙인다. 살다보면 (자기 분야에서) 필요한 말만 쓰게 되고, 전세계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다보니 아쉬운 놈이 대충 알아듣게 되어 있다고.
그러니 이경숙 위원장이 '오렌지'라니까 못알아듣고 '오뤤지'하니까 알더라며 새로운 영어교육의 당위성을 말한 것은 좀 우습다. 결국 '오뤤지'가 통한 것 아닌가? 나는 '오뤤지'도 못 알아들어서 '코크Coke'를 마셔야 했는데! 그런데도 난 영어 없이 산다. 일적으로도 영어보다 국어가 더 중요하고, 향후 내 인생에 영어는 해외여행과 조카들과의 한담을 제외하곤 별 쓸모도 없어 보인다. 내가 하고픈 말은, 우리나라의 온국민이 유학생이 되거나 해외업무를 하게 되는 게 아니듯이, 영어를 배워도 별로 써먹을 데가 없는 사람 또한 많다는 이야기다. 물론, 어릴 때부터 학교수업만으로 영어를 잘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뜻이 좋아도 방법이 나쁘면 국민의 분노를 산다는 것을 이미 참여정부를 통해 배우지 않았는가? '긍정'은 악평에 귀를 닫고 돌진하는 고집불통을 뜻하는 말이 아님을 생각해주기 바란다.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를 외국사례와 탁상공론으로 가늠하지 말고, 피터지게 현실과 싸우고 있는 학부모-아동들에게, 교육정책의 수혜자들에게 한번이라도 물어보길 바란다. 수혜자가 아닌 나로서는, 영어가 국가적으로 기를 쓰고 가르쳐야할 '필수언어'도 '우수언어'도 아니라고 생각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