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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열차

2008년 2월 10일

by 와옹 2008. 2. 12.
국치일이라고까지 표현한 숭례문 전소의 날.
600년 역사의 상실 앞에서 국민과 공직자들의 태도는 사뭇 다른 것 같다.
국민들은 깊은 상실감과 수치감과 분노로 떨고
관계자들은 내가 더 큰 불똥에 맞을까봐 떨고.
사퇴가 뭐 대단한 책임지는 행동인 양 구는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그렇고
국민의 (분노 어린) 성금으로 재현하는 게 뜻 깊겠다는 이명박 당선인도 그렇고,
하나같이 국민의 심정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책임을 지겠다고? 그럼 관련자의 가산을 몰수하고 해임하라. 감옥에라도 처넣지 왜?
서로 책임전가를 하는 문화재청과 중구청과 보안회사와 소방방재청 모두모두 책임을 져라.
그렇다고 한들 600년 역사의 혼이, 자그마치 국보 1호라는 자존심이 회복될까?

태안 기름유출 사건 때도 책임회피하다가(형평성이니 기준이니 따지느라) 어민들이 죽던 말던 하더니, 이번엔 문화재를 죽이는구나.
화재로 소실되었던 일본의 금각사는 국민성금으로 재건축했다고 한다.
인재라고 해도, 태안 사태같은 재앙 앞에서는 책임을 가리는 것보다 사람 살리는 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숭례문은 다르다.
우리는 작은 불씨가 활활 타오르며 문화재를 집어삼키는 것을 지켜봤단 말이다. 아니, 지켜봐야 했다!
그런 무력감이 또 있을까.
온국민과 유구한 역사의 긍지가 고작 한명의 방화범에 의해 불살라졌다는 무력감.
그리고 멍청한 관료주의가 그것을 방조했다는 걸 안 후의 더 큰 무력감.
그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좌절감.
그걸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상부의 명령이 어떻든 목조건물의 특성이 어떻든, 다섯시간 동안 왜 불을 끄기는커녕 더 키웠는지 국민이 이해할 수 있을까?
지휘자와 관련자들이 명령체계와 자신의 안위보다 숭례문의 의미와 가치를 더 걱정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압했어야 옳다.
할만큼 했다고? 물대포만 줄창 쐈다면서 뭘 할만큼 했다는건가?
송진에 물이 닿으면 더 번지는데도 어디선가 내려온 '신중한 진압' 명령에 다른 수를 쓰지 못했다는 게 할만큼 한 거라니...
그래, 자신의 위치에서는 다들 할만큼 했지. 그러니까 그 위치에서 해임하는 것이 최고의 벌이요 책임이란 말인가.
당신네가 뭐 그리 대단해서 고작 사임하는 것으로 600년의 무게를 책임지겠다는 건지!
오만하고 방자하고, 근본은커녕 민심도 꿰뚫지 못하고 있다.
 
누가 그랬다.
노무현 정부가 10년동안 뽑지 못한 전봇대를 이명박 당선인이 단박에 뽑아버렸다고.
그러자 누가 또 그랬다.
그거 한개 뽑아달란 말이 아니었다고. 그 전봇대는 그런 식으로 불합리하게 방치된 도로 곳곳을 상징하는 거였을 뿐이라고.
사람들은 후자의 목소리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부는 기억해야 한다.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듣고 헤아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