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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열차

다 그렇게 사는 거지

by 와옹 2008. 1. 30.

어찌된 게 친구들이 다 서울 외곽에 산다.
인천 수원 광명 죽전 의정부.. 동서남북 외곽에 골고루 퍼져 있다.
한술 더 떠 남편들은 두바이나 러시아에 파견근무 얘기가 나오니, 참 멀고도 멀다. ^^;
하여, 1년에 몇번 만나기도 힘든 친구들의 집에 놀러가기는 거의 연례, 아니 격연례 행사까지도 되고마는데...
며칠 전 의정부 지나 동두천 못 미쳐 사는 친구네 집엘 놀러갔다.
작년에 애기 내복 사놓고 못 가서 작아진 애기옷을 우리 둘째 조카한테 주고 말았던 비운의(?) 친구네 집이다.
하필이면 제일로 춥다던 지난 목요일(24일, 영하 9도), 인천 사는 언니랑 손 잡고 찾아갔다.
2시간 20분 쯤 걸리는 '여행'길로, 죽전 사는 명양 다음으로 먼 코스였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애기들)을 만나면 항상 긴장한다. 애기 이름이 뭐였더라, 몇개월이나 되었더라(한 돌 지났나? 두 돌?), 남자였나 여자였나 헷갈려서. 다행히 포항발 지행댁이 된 친구의 딸래미는 여자아이다웠다. ^^

친구는 결혼 전 이미지와 달리, 쿠키와 오븐스파게티를 만들어 주는 아기자기한 살림꾼의 면모를 보여줬다.
스파게티에 아이스티를 곁들여주는 센스까지. 우와, 역시 애기엄마구나!
입담이 까칠한 친구라 거침없이 시댁 흉을 보려는데, 그 포스 만발하기도 전에 인천댁 언니의 시집살이 봇물이 터졌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수다는 5시간을 내리 떨고 떨어도 끝이 없었다. 한 2년 묵은 얘기를 털어내니 오죽하랴.
바느질과 담 쌓을 것 같던 친구가 소파커버니 애기의자를 만들어 놨길래 감탄했더니,
"너도 새벽 4시까지 잠 안 와 봐라. 저게 다 한이 서린 바느질이다.." 한다.
깔깔 웃었지만 그 한마디로 마음고생이 짐작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는 게 좋아 보였다.
밖에서 볼 때보다 살림하는 공간에 들어와 보니, '말은 그래도 잘 살고 있구나' 싶다.
정돈된 집안에서 느껴지는 공기가 안정감이 있었다. 아마 인천댁 언니에게도 그런 무엇이 있을거라고 짐작해 본다.

먼 길을 가야하므로 저녁 8시에 집을 나섰다. 지행역 신시가지.. 정말 먼 곳이다. 서울 나오기 싫을 것 같다.
여기에 대면 일산은 서울에서 가까운 느낌마저 든다. 내가 익숙해서 그런가?
헤어지며 인천댁 언니가 말했다. 안타까움을 절절 묻혀서!
"우리 또 언제 보냐."
또 누구 애가 태어나거나 돌잔치를 하거나 누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못 보는 걸까.
서글프게도 지난 2년간 쭉 그런 식이었다.
몸보다 다들 마음이 바빠서 못 본다. 그래도 괜찮다. 다 그런 걸 아니까.
이제는 한참 연락이 없어도 "이 무심한 것아!"하고 성내는 친구들이 별로 없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서로 속상한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 항상 시간이 웬수지...

그런 맥락으로 망년회 이후 처음으로 전화한(ㅋㅋ) 소나무양과 간만에 2시간이 넘도록 수다를 떨었다.
파란만장한 결혼생활이라 하면 별로 빠지지 않을 소나무양이 어디선가 들은 결혼의 정의를 내게도 들려줬다.
"결혼은 화려한 콩깍지로 시작해서 참담한 이해로 끝나는 것" 이라고.
소나무양은 엄청 공감하면서 사는 게 다 그렇다는 유구한 어르신들의 결론에 이르렀다.
"야, 다 둘러봐도 백점짜리 남자는 없더라.
간혹 있으면 집안이 문제 있고, 진짜 가정적이고 성품 좋은 남자는 직장이 번듯하지 않고,
성품 좋고 다 갖춘 남자는 바람을 핀단 말이지.
그리고 가아끔, 아주 드물게 행복한 커플이 있는데, 그 사람들한텐 애기가 안 생기더라."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맞아, 맞아.
세상에 백점짜리 행복은 없나보다.
남편과 돈이 속 썩이면 자식이 행복을 주고
자식이 속 썩이면 다른 무언가가 위안을 주고,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라 해도 반드시 한가지 부족함은 생긴다. 단 한가지 부족함은 유난히 크게 느껴지곤 한다.
"이것이 좋은 일인지 흉한 일인지 어떻게 아오?"로 일관했던 '새옹지마' 이야기가 새삼, 아니 이제서야 감탄스레 와 닿는다.

세상 다 그렇게 사는 거지.
이젠 이 말이 슬프게 들리지 않는다.
행복도 불행도 다 여백을 안고 있다.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건, 가진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