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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열차

밤 열 두시에

by 와옹 2009. 10. 2.
대학 동아리 선배가 전화를 했다.
12시에 깜짝 놀라 받았는데 첫마디가 "야행성이라더니 맞구나"였다.
순간 누가 잘못 걸었나 했는데, 아, 그 형이었다.
대학 때 좋아했고 내 친한 소나무양과 친한 그 형.
연락은 1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 하지만 지금도 동아리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맑다고 생각하는 그 선배.
옥상에서 술을 마시다 부인은 내려가고 달은 밝고 해서 내 생각이 났단다. (그래요, 전 보름달입니다)
마침 기형도의 시를 읽어서일까.
80년대 학번인 그 형에게서 그 시대의-386세대의-아릿함이 느껴졌다.
특히나 음악 하는 사람이라 순수한 데가 있고 아이같은 면도 있다. 
갑자기 밤 12시에 전화해서도 무슨 일이 있어야 전화하냐고 묻는 형.
감수성 풍부하고 유머러스하고 약삭빠르지 못하고 사람 좋아하는 호인.
그래서 아릿하다. 꿈꾸었고 벗어나려 했으나 어릴 적과 같은 옥상에 돌아와 있다는 형이
시인같이 느껴졌다.

-달을 팔꿈치로 가리고 보니까 이제 별이 보이네.

그리고, 처음엔 놀랐지만
대학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 감상적인 이야기를 잠깐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 이젠 고마울 만큼
나도 나이가 들었나보다.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죠?
-그으럼.

이런 바보같은 대화로 마무리한 나의 퍼석퍼석함을 어쩌면 좋을까.
농담이었다지만 '말재주는 있는데 신실함이 없다' 했던 누구의 말이 괜히 떠오르며..
달빛을 벗삼아 시인이 된 형의 옥상 음주가 따뜻하게 마무리되었길 바래본다.
모기를 잘... 피해서.


아. 가을이구나.
달에게라도 위로받고 싶은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