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열광하는 인물이 별로 없는 나이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꾸준히 있었다.
아주 어릴 때,
안데르센이나 그림, 권정생 등등의 동화작가 샘들을 거쳐
<지와 사랑>을 읽고 헤르만 헤세를 좋아했고 <--나의 지적허영의 출발이랄까..ㅡ.ㅡ
<삼총사>의 뒤마와 <--내가 예술보다 대중오락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해준 열광작!!
<마지막 잎새, 경찰관과 찬송가, 20년 후, 붉은 추장의 몸값> 등등으로 유명한 O.헨리와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시리즈를 쓴 조반니노 과레스끼를 좋아했다.
<--과레스끼를 통해 냉소적인 풍자를, O.헨리를 통해 유머감각을 익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에 주목하게 된 것은 <마주보기><하늘을 나는 교실>의 에리히 케스트너 부터인 것 같다.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서도 케스트너의 작품이 다시 보고 싶어졌고 그만한 풍자와 따뜻한 시선을 가진 작가는 없을 것 같았다. 케스트너를 보면서 막연히, 나도 읽으면 행복해지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독일문학은 심히 유행을 타는 분야라서.. 그다지 많은 작품을 볼 기회가 없었다.
대학생 이후에는 케스트너 외에 뚜렷이 좋아한 작가가 없었는데, 그것은 조금 슬픈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쪽으로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나보다.
그러다가 최근 몇년 사이에 닮고싶은 작가가 생겼으니, 바로 너무나도 유명한 미하엘 엔데다.
이분의 <모모>는 몇년 전 삼순이 드라마 덕에 또한번 붐을 맞았는데, 이상하게 이 이야기는 읽기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마음에 너무 어둡게 느껴진 것 같다. 그 기억이 최근까지 잠재의식을 주무르고 있었는지, 책장에는 꽂혀있으나 읽지 않은 책 최장기간 넘버원을 자랑한다. (자랑이다)
재미있게도, 나는 이분의 책을 꽤 많이 갖고 있는데 다 읽은 건 단편집밖에 없는 것 같다. ^^;
어쨌든 그 단편집 하나로 나는 엔데의 팬이 되었다.
팬이 되고도 안 읽는 건 뭐랄까, 장 담그기에 적당한 날씨를 기다리는 것 같은 마음이랄까? 내처 읽기 아까운 마음? 뭐 그런 거 같다. 재미있는 이야기일 수록 끝내기 싫은 마음.
내가 좋아한 작가들을 늘어놓고 보니, 대충 나의 취향이 드러난다.
'대중적'이고 '이야기가 재미있'고 '유머 혹은 풍자감각을 지닌' 동화적인 판타지나 '모험 성장'소설을 사랑하는 나. (지금 깨달았다)
그중에서도 미하엘 엔데의 이 말에 천퍼센트 공감해버렸다.
"나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목표입니다. 백 년쯤 뒤에 내가 지어낸 이야기를 팔레르모에 있는 이야기꾼들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하게 하자는 것이지요. 제임스 조이스가 쓴 [율리시스]로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끔 하지 못하지만 뒤마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문학가가 아닙니다."
나도 그런 글쟁이가 되고 싶다.
한핏줄 공감어록 ↓
2007/03/25 - [이책들이사는법/책갈피] -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아주 어릴 때,
안데르센이나 그림, 권정생 등등의 동화작가 샘들을 거쳐
<지와 사랑>을 읽고 헤르만 헤세를 좋아했고 <--나의 지적허영의 출발이랄까..ㅡ.ㅡ
<삼총사>의 뒤마와 <--내가 예술보다 대중오락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해준 열광작!!
<마지막 잎새, 경찰관과 찬송가, 20년 후, 붉은 추장의 몸값> 등등으로 유명한 O.헨리와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시리즈를 쓴 조반니노 과레스끼를 좋아했다.
<--과레스끼를 통해 냉소적인 풍자를, O.헨리를 통해 유머감각을 익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에 주목하게 된 것은 <마주보기><하늘을 나는 교실>의 에리히 케스트너 부터인 것 같다.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서도 케스트너의 작품이 다시 보고 싶어졌고 그만한 풍자와 따뜻한 시선을 가진 작가는 없을 것 같았다. 케스트너를 보면서 막연히, 나도 읽으면 행복해지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독일문학은 심히 유행을 타는 분야라서.. 그다지 많은 작품을 볼 기회가 없었다.
대학생 이후에는 케스트너 외에 뚜렷이 좋아한 작가가 없었는데, 그것은 조금 슬픈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쪽으로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나보다.
그러다가 최근 몇년 사이에 닮고싶은 작가가 생겼으니, 바로 너무나도 유명한 미하엘 엔데다.
이분의 <모모>는 몇년 전 삼순이 드라마 덕에 또한번 붐을 맞았는데, 이상하게 이 이야기는 읽기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마음에 너무 어둡게 느껴진 것 같다. 그 기억이 최근까지 잠재의식을 주무르고 있었는지, 책장에는 꽂혀있으나 읽지 않은 책 최장기간 넘버원을 자랑한다. (자랑이다)
재미있게도, 나는 이분의 책을 꽤 많이 갖고 있는데 다 읽은 건 단편집밖에 없는 것 같다. ^^;
어쨌든 그 단편집 하나로 나는 엔데의 팬이 되었다.
팬이 되고도 안 읽는 건 뭐랄까, 장 담그기에 적당한 날씨를 기다리는 것 같은 마음이랄까? 내처 읽기 아까운 마음? 뭐 그런 거 같다. 재미있는 이야기일 수록 끝내기 싫은 마음.
내가 좋아한 작가들을 늘어놓고 보니, 대충 나의 취향이 드러난다.
'대중적'이고 '이야기가 재미있'고 '유머 혹은 풍자감각을 지닌' 동화적인 판타지나 '모험 성장'소설을 사랑하는 나. (지금 깨달았다)
그중에서도 미하엘 엔데의 이 말에 천퍼센트 공감해버렸다.
"나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목표입니다. 백 년쯤 뒤에 내가 지어낸 이야기를 팔레르모에 있는 이야기꾼들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하게 하자는 것이지요. 제임스 조이스가 쓴 [율리시스]로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끔 하지 못하지만 뒤마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문학가가 아닙니다."
나도 그런 글쟁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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