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워낙 책을 느리게 읽어서, 어릴 때부터 읽고싶은 책의 수요를 절반도 소화하지 못해 고민이었다.
그래서 초딩 때, 오빠에게 물어봤다.
"오빠, 책을 대충이라도 빨리 많이 읽는 게 나을까~ 느리더라도 찬찬히 정독하는 게 나을까?"
오빠는 나의 심오한 질문에 아주 잠깐 생각하더니(3초쯤 생각했을까?)
"글쎄, 정독하면 좋겠지만 다양한 걸 많이 읽는 게 좋지 않겠냐?"
라고 무정하게 말했다.
"뜻을 생각하면서 꼼꼼히 읽어야 진짜 마음의 양식이 되는 거 아냐?"
"하지만 쌓인 지식은 무시할 수 없는 거야. 그리고 세상엔 꼼꼼히 읽지 않아도 되는 책도 많거든."
그 말에 나는 꼬리를 내렸다.
평균 한달에 10권, 요즘은 바빠서 1~2권을 읽는다는 독서가로 알려진 이명박 대통령.
느리게 읽는 나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아서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필요한 부분만 빠르게 짚어 읽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역시나, 내 짐작대로였다.
이 대통령은 책장을 넘기다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읽고 또 휘리릭 넘기는 식으로 '내게 필요한 내용'을 골라 읽는다고 한다. 나도 일을 위해서 '자료로써' 책을 읽을 땐 이렇게 한다. 머릿속에 뚜렷한 주제를 가지고 책을 펼치면, 그에 관련된 부연설명이나 반론을 놀랄만큼 쏙쏙 찾아내곤 한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생각을 살지울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의 다독가이며 장서가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대통령의 독서법이라고 한다면 조금 걱정되는 것이, 이것은 어떤 결과를 내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독서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이 걱정스럽다. 독서가 수단이 되면, 읽는 사람은 오히려 완고해지기 쉽다. 폭넓은 주장을 수용하고 사유하기 보다는 당장의 목적과 필요에 부합하는 내용을 취하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
편식하는 아이들이 굳이 싫은 음식을 먹어야할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추상적인 내용을 다루는 책은 즐기지 않는다는 대통령.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만은 않아서가 아닐까요...?
나랏일은 오죽하겠습니까.
(2008/2/25 에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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