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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열차

어쩌다 그만 추격자

by 와옹 2008. 8. 1.
영화 추격자를 봐야한다고 곱씹고 있어서 그랬나...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

기.
아침. 엄마가 물꿈 얘기를 꺼내다. 물꿈은 성취와 손실로 해석될 수 있는 꿈. 성취라고 믿기로 했다.
집에서 쉬고싶었는데, 냉면 얻어먹으려고 엄마를 쫓아나감.
마을버스 안에서, 엄마가 들고 나온 장바구니랑 똑같은 걸 들고가는 사람을 발견하고 즐거워했다.
잠시 후.. 목적지에 내리자마자 핸드폰을 흘린 것을 깨닫다!!!

승.
이미 떠나버린 마을버스. 황당함에 마을버스 표지판을 봤으나 전화번호 없음.
"엄마, 내 핸폰에 전화해봐!" 했으나 핸드폰 안가져오심...
택시를 타고 쫓아가자는 엄마, 공짜폰도 많은데 걍 바꿀까하는 유혹에 잠시 사로잡힌 나..
어영부영하는 사이 마을버스가 또 옴!! (배차간격이 10분은 되는 버스가 1-2분만에?!)
그래서 일단 타고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앞자리의 할머니 한분이 당장 핸드폰으루 전화해보라고 우렁차게 명령하셨다.
"우리 핸드폰 없는데요.."했더니 대뜸 "내 꺼 써요!" 하곤 손수 내 번호를 누르시고 통화까지 직접 하시는데...
"전화 줏으셨죠? (줏었네, 하며 나를 보신 후) 지금 어디 계세요?"
어쩌구저쩌구 하다가 내게 전화기를 넘겨주신다. 전화기 너머도 젊은 할머니 음성.
어디 계시냐고 물었는데 하나로 마트란다. 으잉? 거긴 반대방향인데... 이상했지만 계속 통화를 했다.
"제가 바로 다음 버스 타고 가고 있거든요? 금방 갈거에요. 저기, 어떤 옷 입고 계세요?"
"근데.. 누구신데요?"
"(이름을 대라는 건가 싶어 이름을 대고) 핸드폰 잃어버린 사람인데요."
"근데.. 왜 나를 만나려고 해요?"
"예? 핸드폰 주우셨잖아요?"
"아니요?"
"주우셨다고.. 지금 제 핸드폰으로 걸었는데 받으셨거든요?"
"아니라니까요. 이건 내 핸드폰이에요. 내 번호는..."
하며 친절히 번호를 쭉 부르시는 할머니.
당황해서 끊고 보니 전화번호가 엉뚱한 게 찍혀 있었다. (할머니 대체 뭐 누르신 거에요!? ㅇ_ㅇ;;;)
머쓱한 할머니 왈, "그럴리가 없어. 내가 분명히 전화 줏으셨죠 했더니 예,그랬단 말이야."
아아.. 이는 필시 "전화 줏으셨죠"를 "전화 주셨죠(하셨죠)"로 잘못 듣고 벌어진 사태였으리라. T^T
대체 뭘 누르신 걸까...내 번호랑 영판 다르던데. 설마, 아는 분한테 전화해놓고 한참 통화하신 거?

어쨌든, 그 덕에 버스 안 승객 모두가 내 이름까지 알게 되어 엄청 부끄러워짐.
분위기 어색 어색..
울엄마와 핸폰 빌려준 할머니 두분만이 우렁찬 대화 하시고... 어딜 가려 했는지 어디서 왔는지, 시시콜콜한 사건의 전모가 안내방송되었다.. (라디오 안 켜는 버스가 이렇게 미웠던 적은 없다..;;;)
그때, 다시 걸어보라는 할머니의 2차 명령.
친절하시게도 "기사님 꺼 빌려서 해봐!" <---통화료가 겁나셨던 모양.
결국 운전기사님 핸폰으로 직접 내가 전화해봤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
받지 않았다는 건, 누가 들고 튀었거나 버스기사가 수취했으나 운전중이라 못받는 거,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설마 공짜폰이 넘쳐나는 요즘 누가 들고 가진 않았겠지...
아니지, 유료전화 팍팍 쓰고 버릴지도 몰라...
혼자 괴로워하던 차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Mid Point (사건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는 이야기의 딱 중간지점)****************

"저거 100번 아니야?"
오잉? 우리가 탔던 버스라고?
승용차 두 대를 사이에 두고 서있는 똑같은 버스!! 이럴수가!! 이거 배차간격이 10분 아니어욧?!
"아놔, 핸드폰 잃어버렸다니까 흥분해서 빨리 와버렸네."
헉~ 어째 빠르다 했더니 달리셨습니까? 기사님...
"앞차가 늦었어. 나는 정상인데. (호승심이 동하셨는지) 따라잡을까?"
일순, 버스 안에 희망의 설레임이 요동치고~
"그럼, 신호 걸렸을 때 제가 앞차로 뛰어가면 되겠네요."
잠시 희망을 품었으나.
"틀렸다. 내가 쫓아온 거 보고 저 차는 도망갈텐데."
아니나 다를까. 배차간격을 추궁당할까 두려우셨던지, 어느새 앞차는 몇백미터 앞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아아.. 내 핸드폰이 저기 있는데...ㅠ_ㅠ
하여간 그때부터 괜히 흥분한 운전기사 아저씨(끽해야 40대로 보이는) 더욱 힘을 내시고...
"풍동 가면 기사들 밥먹는데 있거든. 물건 주우면 거기 갖다 놓으니까 글루 가면 돼. 몇정거 안남았어."
아예... 아저씨의 박력에 저는 그저 조그맣게 감사합니다 할 뿐.

전.
이건 뭐 [스피드]두 아니구 갑자기 웬 추격 모드? 추격자가 아니라 추격버스잖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어느새 이 상황이 웃겨 죽겠고...
풍동을 조금 남겨두고, 드디어 신호에 걸린 앞차를 따라잡았다!!! 부라보 기사님~.
나 지금 내려서 뛰면 될거 같은데? 라는 포즈로 스탠바이 하고 있는데
기사님, 수신호로 제지한다. "아냐, 기다려봐."
곧이어 터프하게 버스를 옆으루 대고! 클락션 울리고! "문 좀 열어봐요!" 하는 기사님...ㅠ_ㅠ;; 쪽팔려..
"거기 핸드폰 있어요?!"
그러자, 손에 뭔가 들고 흔드는 앞버스 기사님..! 핸드폰의 존재를 확인했다!!
(아싸! T^T)
기사 아저씨, 영화 주인공같이 득의만만한 미소를 띠고 "오케이, 이제 됐으." 하고 기어를 넣으시더니,
앞버스를 추월해 버리신다! 헉!!! 아니 저.. 배차.. 간격은...?
추월당한 앞버스의 운명을 걱정하다가.. 그제서야 뒷자리 승객들의 존재가 느껴진 나...!
그저 좀 빨리 온 거 외에 피해 끼친 건 없지만, 그래도 소란을 피운게 미안해졌다. (승객들은 시종일관 조용했다...매우 조용...)
한 아저씨가 "핸드폰을 찾았으니 다행이지." 라고 말해주셨지만
죄송하다고 꾸벅 인사하고 후다닥 내렸다.

결.
그리고 핸드폰을 찾고... 감사의 비타오백을 돌리고...
돌아가는 버스를 10분 기다려서 타고... 원래의 목적지로 향했다.
**********
반전.
돌아오는 버스 안.
이번엔 엄마가 장바구니를 놓고 내린 걸 깨닫다. ㅇ_ㅇ!! (두번째 마을버스=추격버스에)
장바구니 안엔 우산 두개가 있었고
결국 나는 시장 본 값 3만원을 내야 했다...
다행히 냉면은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