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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해요~문화생활/영화

올해도 넘버링 259. 동사서독 리덕스

by 와옹 2020. 2. 6.

2008(1994작을 재편집) / 98분
홍콩, 무협 멜로

원작 김용 (김용의 '사조삼부곡'의 세계관이 원작)
각본
감독 왕가위
출연 장국영, 양가휘, 양조위, 장학우, 임청하, 장만옥, 유가령, 양채니

난해. 
다시 봐도 불친절. 
상징과 암시 어쩌고 하는데 그거 다 알고 봐도 겉멋 작렬.
사랑의 회한과 그리움에 대한 사무치는 감정은 알겠고 전해진다. 
하지만 너무나 불친절한 편집에 이게 이건지 저건지 다시 보고 나무위키도 보고 오리지널 1994년작의 다른 부분도 보고 다 했는데 그래도 좋은 평가는 못하겠다. 중년 세대의 남자들이 못 이룬 첫사랑을 추억하며 술잔 들이키는 그런 갬성. 어쩌면 조금만 더 친절했더라면 이보다는 너그러웠을지도. 
리덕스 버전에서 빼버린 초반 동사(황약사/양가휘 분) 서독(구양봉/장국영 분) 각각의 무술씬, 엔딩의 서독과 홍칠공(장학우 분)의 재회 대결은 오리지널 그대로 놔뒀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정신 없든 말든 그게 있어서 좀더 설명이 되는 느낌. 다만 오리지널 버전은 계절 구분 자막도 없어서 더 정신없다고 한다. 

김용의 사조삼부곡 즉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로 이어지는 이 김용월드에서 주요고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동사서독 남제북개 중신통의 5인이다. 그리고 이들보다 더 고수라는 언제 살다 간 지도 알 수 없는 전설의 독고구패가 존재한다. 이들은 주인공이 아니고 이미 완성된 고수들로 주인공들과 이렇게 저렇게 얽히며 스승이 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하는 인물들이다. 이중에 괴팍한 동사와 악랄한 서독을 중심으로 일종의 프리퀄 같은 이야기를 만든 게 왕가위의 <동사서독>이다. (리덕스는 손상된 필름을 복원하고 재편집해 칸에서 특별상영한 버전이라고 한다.) 즉, 이건 김용월드를 아는 사람들이 봐야 더 즐거운 일종의 헌정작 또는 팬픽 같은 거다. 
생각해 봐요, 팬픽이 아무리 잘 써도 팬들이 봤을 때 더 재밌는 거 아닙니까?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는 만큼 보인다'느니 '한번 보고는 모른다'느니 '몰라도 재밌는 이야기'라고 말하는데... 아니요, 이 영화는 팬픽임다. 나처럼 사조삼부곡을 읽고 보고(드라마) 다 했어도 본 지 한참 돼 기억이 흐릿한 사람에게도 불친절하고 재미없는 사랑이야기였다구요. 

왕가위의 감성이나 영상미나 상징이나 촌철살인의 대사들까지 폄하하는 게 아니다. 
다만, 애매했던 모든 걸 다 알고 더 깊은 울림이 생기는 게 아니라 그저 구멍난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게 될 뿐이라는 게 나의 불만. 그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했을 때 가슴이 쿵할 줄 알았더니 "뭐야 자업자득 아녀..." 이런 기분이 들어서. 극중 인물 다수는 자존심이든 화풀이든 실수로든, 사랑을 배신하거나 떠난 뒤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뒤늦은 후회와 깨달음과 그리움과 헛헛함에 공감한다면 이 영화가 더없는 걸작일 것이다. 근데, 그런 나쁜 짓이 흔한 나쁜 짓이 아니잖아... 친구 아내를 건드리고 애인의 형과 결혼하고 애인의 아이를 낳고(이건 영화에선 표현되지 않지만 사조삼부곡에 의하면 그렇다)..... 독백 몇마디로 설명될 그런 후회가 아니잖아.... 영화는 훨씬 더 친절했어야 한다. 감정이 남아야 할 영화가 스타일만 남아버렸다. 
물론 과거엔 저런 사연이 차고 넘쳤다. 남자가 여자를 무책임하게 스쳐가고 건드리고 파탄나고 칼부림 나고... 옛날 감성으로 본다면 쉽게 공감할 수도 있겠다. 앞서 중년 남자들의 첫사랑 갬성이라고 한 것도 그런 맥락. (어차피 김용 월드의 여성상이 -엄청난 개성의 만렙녀여도- 전근대적인 편이니, 그 세계관을 골자로, 20세기에 성장한 남성 감독이 20세기에 그려낸 사랑의 회한은 어쩌면 이 정도도 대단히 앞선 감각으로, 중립적으로 그려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양조위, 임청하, 장국영, 장만옥을 한 작품에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볼 가치는 충분하다. 
원래 구양봉은 양조위였다가 후에 장국영으로 바뀌었다던데... 양조위도 멋졌겠지만 엔딩의 이런 구양봉은 그냥 얼굴로 다 이김..... 의미 없이 그냥 멋지다. 얼굴이 다했다, 딱 그거. (근데 그 얼굴이 연기도 한다... 크흐)

스타일로 휘감긴 했지만 영화 속 무술 씬도 꽤 멋있다. 
특히 양조위의 무술씬이 좋았다. 캐릭터도 제일 안쓰럽고...ㅠ.ㅠ
호불호가 극렬히 갈릴 영화. 난 몇장면 빼고 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