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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해요~문화생활/중드

중드 - 표문 (2014년/38부작)

by 와옹 2017. 3. 29.

예술부심이 느껴지는 포스터! 다행히 저렇게 칙칙한 드라마는 아니다.

드라마는 초반 5회를 봐 넘기기 어려운 구성력으로 내 인내를 시험했다.
솔직히 요즘 곽건화 콩깍지가 아니라면 일찌감치 접었을 거다. 다행히 5회를 넘어가면 본격적인 류안순의 표국 개척기가 시작되면서 아기자기한 재미를 안겨주는데, 콩깍지가 씌여서 포기 안한게 넘나도 다행인 작품이었다. 

중반까지는 일종의 성공스토리로도 볼 수 있는데.. 곧은 성격으로 대기업 월급사장까지 올라갔다 굴러 떨어진 주인공이 다 쓰러져가는 벤처를 일으키는 얘기랄까... (사실은 청나라 말엽~민국초, 표국이란 경호운송업체의 사랑과 은원의 흥망성쇠 이야기) 
처세가 서툴고 고집스러운 주인공. 이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런 류안순의 곁에 하나둘 모여드는 사기꾼 같은 사람들과 능구렁이들, 이런저런 실력자들이 어떻게 그를 돕게 되는지 그 과정이 내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류안순의 매력은 어떤 난관에도 가치관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규칙'을 반드시 지키는 삶,
꽉 막히지도 않았고 당하기만 하지도 않으면서 묵묵히 뜻을 관철하는 그런 삶의 태도에 나도 감명을 받았다. 

물론 여기서도 엄청난 행운이 따르지만 류안순이 럭키가이란 생각은 별로 안 든다.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는 행운을 살려내는 면면이 오히려 닮고 싶다능. (안타깝게도 나는 류안순보다 이희평에 가까운 인간 같아서 슬펐뜸 ㅜㅜ)

콕 집어서 좋았던 장면 하나. 
류안순이 대기업 후계자 자리로그의 터전으로 되돌아오라는 요청을 거절하며 한 말. 

"내가 큰 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걸 잊었어요."
"저는 잘 넘어졌고 많이 배웠습니다."

"조금이라도 남에게 의지하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을요."

ㅠㅠ.... 나 여기서... 공감 200%

드라마에 대한 촌평을 하자면 
이야기나 연기력, 영상미, 음악, 촬영술, 무술씬 다 빼어나고 좋다.
그런데 예술부심이 지나쳐 엄청 느린 템포와 장면을 뚝뚝 끊어먹는 구성으로 재미를 확 떨어트린다. 
(영상미가 참 좋은데 너무 징하게 보여줘..... 막 강요해...)
그런데도 좋은 이야기이고 정성 들여 만든 고품질 드라마다.
가끔 연결이 이상한 페이드아웃이 빈발하는데 아마 가위질의 흔적이 아닐까 함... 
근데 그냥도 가위질한 것 같은 구성력을 뽐내므로 확신은 못하겠음...

여주인공 가청(노요정 역)이 발랄씩씩 매력적이어서 넋을 놓고 봤고, 
곽건화는 변발일 때가 이연걸 같아서 더 멋있었고,
<신삼국>의 장비와 사마의, <위장자>의 명대 아버님이 나와 반가웠다. <랑야방>의 소경예도 28회에 깜짝 출연. ^^

청나라가 망하고 혁명으로 민국이 들어선 격변기의 이야기라
일본으로 치면 메이지유신, 우리는 을사늑약 전후가 이와 비슷하겠지.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을 땐 <신선조>도 떠오르고.. 구시대의 유물을 붙드는 듯한 집단이란 점도 조금 닮았다. 
하지만 그런 시대를 그리는데도 사상적인 내용은 하나도 안 나온다. 
오직 표국이라는 중국 특유의 경호운송업체 사람들에게만(실은 류안순 주변에만) 관심을 두고, 굵직한 시대적 사건들은 그들에게 닥친 배경으로만 기능한다. 세상이 바뀌고 천지가 개벽했는데도 주인공들은 정세를 거의 모르고 그냥 그들의 눈높이에서 달라지는 것들과 부딪친다. 사상가들과 얽히더라도 논쟁이나 감화는 1도 없이, 윗선이 어떻게 바뀌든 다를 게 별로 없는 서민들의 시각으로 그 시대를 바라본 것이 좋았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자연스럽고 진정성 있는 에피소드들이 멋지고, 
가끔 오묘한 유머감각을 발휘해서 웃음을 터지게 만든다.
자연스럽고 억지 하나 없게 웃겨서, 그런 씬들 너무 좋음~ 엄마미소 지어져~


보면서 타케우치 유코가 떠올랐던 노요정 역의 배우 가청. 넘 예쁘고 발랄! 캐릭터도 연기도 참 맘에 들었다. 
여주 언제 나오나 기다리며 본 드라마가 얼마만인지~ (나 여배우에게 박한 사람인데)

그리고 공주님~~~ 출연은 쥐꼬리여도 존재감 짱이었던 이 언니도 넘 좋음! 
어디서 봤나 했더니 <랑야방>의 궁우 낭자였어!!! 우왕~ 
여캐들에 흐뭇할 수 있다니 ^---^ 눈이 즐겁다~. 

키스씬 하나 없는 러브라인도 은근해서 옛스럽고 좋다. 류안순과 노요정의 럽라는 조금 더 씬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뭐, 이 정도도 괜찮다. (드라마 자체가 중요한 연결씬들을 생략해버릴 때가 종종 있어서 그쪽이 더 아쉬움 -_-a) 
심공주와의 썸은 별 장면이 없는데도 배우의 연기와 분위기로 충분히 감정이입돼 좋았고... 심공주도 예뻐서 난 류안순이랑 달달한 씬 좀 있길 바랬는데... 흑흑. 이거슨 넘나 점잖은 드라마. 그래서 멋스럽긴 해요~.



등장만 해도 너무 짜증났던 악역 산묘. 나중엔 나쁜데 으으음.... 얘도 안됐음.

중요한 악역이 셋 나오는데 주인공이 산묘를 '인생 최고의 적'이라고 명명한 것은 좀... 미묘하다. 극중 가장 천성이 잔인한 악당에 노요정을 좋아하긴 해도, 끝까지 걸고 넘어지는 놈은 달리 있었다. 이 드라마는 악역 모두에게 인간적인 면을 부여하지만 그 성질도 결말도 다 다른데, 산묘와 희평은 모두 사랑과 열등감에 인생을 저당잡힌 자들이지만 한쪽은 그에 휘둘렸고 한쪽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또다른 악역 가극목은 박쥐 같은 캐릭인데 셋 중 누가 더 나쁜지 가리기 어려울 만큼 다들 입체적이다. 

군데군데 지루한 씬도 있었지만 마지막엔 끝나는 게 아쉬웠다. 단지 걸어갈 뿐인 별 거 없는 엔딩은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듯 모를듯 느끼게 해준다. 마무리까지 마음에 든 작품은 영화 드라마 통틀어서 오랜만이다. 

곽건화의 필모 중 작품성으로는 <전장사>가 가장 많이 언급되던데, 
<표문>은 뜻밖에 정말 좋았다.
장면을 쓸데없이 조각내는 비루한 구성편집을 진심으로 규탄하게 되지만... (그것만 아니면 명작이 될 뻔)
깊이 있고 진중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좋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나저나 화꺼 작품 리뷰를 이렇게 많이 할 줄은.... 타래료 볼 때만 해도 정말 몰랐어... ㅎㅎㅎ
화꺼가 안목이 있네.


이런 영상미는 지겹게 나옴. 더 멋진 화면이 지겹게 나옴.... 

가끔 이런 재밌는 앵글도 나오고.

CG 없는 무술씬이 소박하게 멋있다.


+) 꼬랑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