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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해요~문화생활/한드

ㄱㅅㅌ이 무슨 항일이야

by 와옹 2012. 6. 27.

8회까지의 진행을 보며 뭔가 모를 불편함을 느낀 건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시작부터 삐그덕이었다.
애초에 항일드라마라고 한류스타 거절 운운할 때, 주원이 배우라면 연기에 욕심내야 한다고 초점 어긋난 얘길 하길래 읭? 했는데 그게 초점이었어....헐.

안티히어로가 영웅이 되어야 항일 정신 폭발하는 건데,
안티히어로가 집안 복수를 하넹.
최강의 적대자 슌지는 조선 여자를 지키려고 일본 순사가 되고.
그 조선 녀자 목단이는 독립운동의 계보를 이어야할 판에 트러블만 잔뜩 일으키고, 내놓을 건 목숨밖에 없으면서 다 책임질 듯이 꽥꽥. (그 목숨 별루 필요없다는 게 문제.)
강토 각성의 계기는 형이랑 엄마가 죽어서. 슌지는 형이 죽어서. (둘 다 죽인 건 강토. 어쩔...)
독립운동의 희생양(?) 홍주였나 그 여자는 일본의 스파이가 돼 돌아옴.

그래 뭐 여기까진 선과 악이 뒤엉킨 인물군상, 나 그런 거 좋아하니까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복수 멜로극으로 너그럽게 봐줄 뻔 했다. 일제 시대라고 꼭 왜놈은 나쁜 놈, 대한독립만세!만 정직하게 외쳐야 좋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객관적인 실상은 드러나길 바랐다. 종로통 상인들이 '아직 어려서 뭘 모르고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는 불쌍한 강토'를 계도하긴커녕 '각시탈이 훔쳐다준 돈뭉치에 환호하고 그게 강산인 줄도 모르고 집에 불지르고 돌 던지는' 우매하고 폭력적인 대중처럼 그려져선 안 되는 거다.

일제시대가 어떤 시대였다는 전제, 이게 이 드라마에는 없다.
그것을 보여줄 포인트는 곳곳에 있다. 형 강산이와 그들의 아버지, 목단이와 독립투사인 그 아버지, 시장 상인들...
그런데 강산이와 강토의 각시탈 활동에는 개인적인 치부나 복수가 연결되고, 독립운동했다는 그들의 아버지는 친일파에 속아서 살해되고(복수의 대상->친일파), 목단이는 도련님 일색 뇌구조에 도시락폭탄도 아닌 짱돌이나 던지면 애국인 줄 아는 트러블메이커이고, 항일단체 같은 서커스단은 재미없는 농담이나 지겹게 해대니... 오히려 악역(순사 시절의 이강토나 일본 스파이 녀자, 기무라 서장) 쪽에서 강한 신념이 느껴진다.
독립투사들은 대체 왜 독립을 원하는가? 왜 일본에 폭력을 가하는가(저항하는가)? 
일본이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려고 했기 때문 아닌가. 온갖 피와 수탈을 동반해서. 
그런 내용이 앞으로 충분히 드러날 가능성은 아직 있다.
하지만 그래도 각시탈이 목적이 가족의 복수라는 것은 변함 없다. (항일이 무슨 복수살해의 면죄부냐? 각시탈이 거지 분장 같은 단순 위장술이냐? 각시탈 자체가 항일의 정신을 담고 있는 메타포인데, 생각 없이 막 쓰지.)

내가 제일 빡쳤던 건 원래 각시탈이었던 강산이에게조차 신념을 빼앗아간 지점이다.
항일정신 충만한 엘리트 지식인이라는 설정으로 충분한 강산이에게, 목숨을 부지하려고 벽에 똥칠을 하며 미친 척 했다는 비겁함을 부여하다니. 그래서 그 죄책감을 털고자 한 복수 행위가 '조선의 영웅'으로 거듭나게 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아차! 각시탈의 메타포는 민족혼이 아니라 복수였구나. 생각 없이 막 쓴 게 아니네.)
이 드라마가 뚜렷한 항일 정신을 담고 있어서 주인공 몇몇이 이런 복잡함을 갖는다면 모르겠다.
실낱같은 항일 코드를 온전히 보여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그나마도 잘근잘근 죽여놓다니.
결국 어떤 시대에도 정의나 신념은 상대적일 뿐이란 건가? 거대한 역사의 비극조차도 개개인의 아등바등하던 삶일 뿐이란 건가?
그게 일방적인 폭력을 당하던 시대에서 할 수 있는 말인가?
100억이나 들여서 항일코드 시대의 히어로를 운운하며 해야할 말인가?
이걸 본 외국인들이 또 역사의식이 약한 젊은이들이 "그래, 그런 시대도 있었지... 서로에게 어쩔 수 없는 비극이었어." 라고 인식하길 바라는가?
차라리 그럴 거면 서로 다른 두 신념이 격돌하게 만들어야 옳지 않은가?
역사를 다룰 때, 밖에서 보기에 편협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으로 이어져온 시대의 정신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왜 하필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하는가? 일제강점기 우리의 정신은 그냥 '항일' '분노' '나라찾기' 따위가 아니다. 그 시대의 정신은 소중한 우리의 혼을 지키는 것이고 부당한 압제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ㄱㅅㅌ의 어디에 이런 정신이 스며있는가?

항일 정신이란 말을 입밖에 내지 말던가,
아니면 이강토가 진정한 각성을 하도록 이끌기 바란다. (그런데 대체 누가 해? 목단이 아버지가 하려나? 어휴...)
그러니까 아직 탈만 썼지 각성하지 못한 주인공의 복수극 따위엔 흥미가 뚝뚝 떨어진다는 말씀.
얘, 복수하려면 그냥 해. 뭘 굳이 형이 쓰던 거 물려받고 그래... 아나바다도 아니고.
이래저래 좀 화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