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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해요~문화생활/한드

구국의 영웅에서 마블 히어로

by 와옹 2012. 7. 26.

최근 중반을 넘은 ㄱㅅㅌ 이야기다.
그동안 욕을 하면서도 기대하게 만들었던 몇몇 지점이 상당수 드러났다.
가장 중요한 여주인공에게의 발각이 나왔고 이제 남은 건 (스포가 맞다면 세번 있다는) 강토의 마지막 각성 정도.
뭐, 독립군을 포함한 대중이 정체를 아는 지점과 친구이자 적인 슌지의 멘붕도 남아 있지만... 그리 기대되지 않는다. 그냥 나는 어제 17화를 보고, 아 진짜 최악의 수를 잘도 선택해 가는구나 헛웃음을 치고 말았다.(ex:제 입으로 정체 밝히는 씬)

이 드라마에 빗발치는 가장 대표적인 불만은 강토의 신념-사명감, 애국심-이 희미해 영웅답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뚜렷한 적이 없다는 것과 재미도 없는데 멜로만 고집한다는 것, 항일은커녕 친일의 느낌마저 풍긴다는 불만이 두드러졌다. 그 이유를 알았다. ㄱㅅㅌ이 모델로 삼은 것은 원작이 그리는 구국의 영웅(그러한 시대의 민중의 영웅)이 아니라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였던 것이다. 아 나 진짜 강토에게서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을 느껴.

왜 ㄳㅌ을 쓰는가, 형의 대를 잇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이것을 당연히 항일과 구국으로 본 사람들에겐 신념도 없이 맨날 사랑 타령하며 탈 쓰는 강토가 못마땅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걸 마블 히어로물에 대입시키면 완전 정석 코스라는 거다.
자,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을 떠올리며 아래를 읽어보시라.
주인공은 원치 않는 능력을 가지며 / 그것을 사사롭게 써보기도 하지만 / 결국엔 사람들을 구하는데(괴롭히는 악당과 싸우는데) 쓴다. // 주인공을 움직이는 동력은 사랑이며, 대부분 영웅일 때는 쌍방향이지만 본모습일 때는 주인공의 짝사랑이다. / 그리고 주인공은 우연한 힘을 얻었을 뿐 어떤 사명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힘을 가진 사람으로서 지나칠 수 없는 도덕심과 여주를 구하려는 마음이 전부다. 즉, 119처럼 무슨 일이 생겨야만 움직이는 수동적인 영웅이다.

정말이지................... 강토랑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헐~ 정말 헐이다 쉣.
문제는 강토가 복수라는 분명한 목적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건 결코 수동적일 수가 없는 상황이며 뚜렷한 신념과 '복수=악의 처단'이라는 구도 없이는 그냥 살인자로 전락하기 딱 좋은 설정이다. 주인공이 구국의 신념 없이 개인적 감정으로 탈을 쓰는 중반부가 조금도 통쾌하지 않은 이유다.

이러니까 세번의 각성을 할 수밖에 없지. 첨에 안티히어로에서 히어로로 돌아서는 각성(소명), 여자 구하려고 탈 쓰다가 항일의 편에 서게 되는 각성(항일=복수더라), 마지막으로 더 큰 그림의 -애국심 쩔고 이타적인- 영웅이 되는 각성.
(이하, 2012/9/8 다 보고난 후의 덧붙임)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지막 각성이 모호하다. 아니, 없다. 14회였나? 담사리의 병아리 타령 이후 항일이 곧 복수라는 노선에 올라타고는 끝까지 그걸 유지한다. 문제는 그가 아무리 개인적인 원수를 갚고 원수들의 조직을 타파한들 항일의 숙제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이 진정한 구국의 각성을 하는 시점은 마지막회에 동지들이고 목단이고 모조리 (허무하게) 죽어버린 후다. 그것도 간단하게, 백건 아저씨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한마디에.....
그러니까 이건 구국의 히어로물이 아니라 마블코믹스의 영웅이 구국의 영웅이 되기까지의 이야기인 셈. 통쾌할 리가 없다.
주인공이 ㄱㅅㅌ을 쓴 순간 시청자가 기대한 장면은 원수의 목을 따는 게 아니라 모두의 영웅이 되는 모습이었는데....(복수는 덤. 근데 드라마는 이놈도 저놈도 복수가 메인.) 

주인공은 가족을 잃고 탈을 쓰기로 마음 먹은 시점에서 충분히 갈등하고 성장했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경찰서로 복귀해 2중적인 삶을 살기로 결심했을 땐 뚜렷한 신념을 가졌어야 한다. '내가 복수하겠다'가 아닌, '더이상 일본의 개로 살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었어야 한다. 그랬다면 좀더 빨리 항일의 의지를 불태웠을 것이고 사랑 앞에 전전긍긍하며 탈을 쓰는 찌질한 모습도 최소화했을 것이고 여주인공이 줄기차게 미끼 노릇하는 민폐상황도 초래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우리의 강토님하는 탈 쓰고도 무려 10회나 더 가야 이런 마음을 굳히게 된다.

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엔 강토라는 인물의 역사의식(시대정신) 부재가 있다. 그에게선 나라를 빼앗겼다는 분노가 조금도 없다. 압정과 차별, 가난에 대한 분노일 뿐이라 시대를 군사독재시절로 바꿔도 하나 거슬릴 게 없다.
왜 하필 일제강점기여야 했는가. 그 시대를 선택한 이상 그 시대가 품고 있는 특유의 아픔이 드러나야 하건만... 대립의 상황만 있지 속국의 비애를 느끼게 한 장면은 없었다는 거... 일본이 패전 이후 미국의 통치를 잠시 받았을 때, 매우 평화로운 간섭이었음에도 그 시절을 '불안했다'라고 회고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1930년대가 아무리 평화로웠다 한들 그것보다 평화로웠을까? 나라가 남의 손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그들이 괴롭히건 말건 그 자체로 견딜 수 없는 불안일 텐데. 이 드라마의 어디에서도 그런 시대적 위기의식을 느낄 수 없다는 것... 그러니 (복수나 저항이 아닌) 항일구국정신이 싹트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작가가 친일이란 말까지 듣게 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블코믹스의 영웅은 평범한 시대를 사는 영웅이고 ㄱㅅㅌ은 특수한 시대를 산 영웅이다. 특수한 시대는 특수한 논리로 풀어야지 현대의 논리로 꿰어맞춰선 안된다. 왜냐하면 영웅은 시대가 낳는 것이니까. 그 시대이기 때문에 살인자가 아니고 영웅인 것이다.

...뭐, 이런 것을 느끼게 해준 드라마.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