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아이> 이후 처음 읽는 텐도 아라타의 소설.
<리큐에게 물어라>와 같은 해 나오키상 공동 수상작이기도 하다.
공동 수상이라면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둘 다 너무나 빼어나거나, 아니면 둘 다 한방이 약하거나.
리큐는 안 읽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내 멋대로 후자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이 책이 대단히 괜찮은 생각을 풀어내고 있지만 이야기적인 재미는 떨어지는 소설이었기에.
이야기적인 재미라 하면 치밀한 구성의 묘라던가 등장인물의 개성, 몰아치는 사건, 그 사건에 휘말리는 사람들의 화학작용 등등... 흔히 말하는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드라마틱함을 최대한 배제한 듯한 느낌이다. 주인공 시즈토가 그러하듯이 감정을 담담하게 억누르는 분위기가 전편을 관통한다. 그리고 이러한 금욕적인(?) 느낌이 소설이라기보단 작가의 철학을 설파한 책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렇다면 그 철학이 대단히 새롭거나 놀라우냐 하면... 글쎄, 내 마음을 울리거나 깊이 공감시키지는 못했다. 그냥 '괜찮다'. 죽음보다도 사람 자체에 주목하는 작가의 시각은 신선하긴 했다. 억울한 죽음이든 안타까운 죽음이든 그 죽음 자체를 떠올리기보다 망자가 어떤 사람이었느냐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에게 사랑받고, 누가 그에게 감사한 적이 있는지"를 기억하려는 시각은 사람의 본질을 파고들면서도 삶과 죽음에 대해 대단히 관조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좋고 나쁜 이야기가 드라마인데, 그 부딪침은 미뤄두고 인물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천착하는 것 자체가 관념적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태생부터가 드라마라기보다는 철학적인 이야기다, 이 소설은.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스포가 될 수도 있으니 건너뛸 분은 슉~)
자극적인 기사를 지어내는 주간지 기자 마키노는 취재 중에 우연히 알게 된 시즈토의 '애도'를 처음으로 인터넷에 공개한다. 그 짧은 만남 이후 마키노는 미워하는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그러한 애도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계속 자문한다. 그리고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 시즈토의 신봉자가 된다.
시즈토의 엄마는 말기암 환자로, 딸의 출산과 자신의 투병이 비슷한 양상을 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시즈토를 그리워하지만 스스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시즈토를 비아냥거리는 마키노의 방문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만 시즈토의 애도를 마음으로 지지한다.
남편을 죽인 죄로 형을 살고 출소한 유키요는 남편을 애도하는 시즈토를 무작정 따라나선다.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전남편의 환영을 떨쳐내고 생사의 의미를 구하려던 동행이 점점 그를 이해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결국 인간적인 삶보다 구도에 가까운 시즈토의 애도를 지지하는 시선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보다시피 특별한 드라마는 없다. 인물들의 삶은 나열되고 서로간에 얼마든지 뜨겁게 얽힐 수 있는데도 피해간다. 덕분에 중반 이후 흡인력은 있는데도 큰 재미는 없다. 작가가 설정한 '애도'와 그 행위자에 대한 설명만이 가득해서.
이야기가 뚝뚝 끊기는 느낌은 <영원의 아이>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그땐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서서히 전모가 드러나고 감정이 켜켜이 쌓여가는 구성의 묘가 있었는데... 이 소설은 주인공인 시즈토의 기행을 설명하는데 급급한 느낌이라 아쉬웠다.
남성 작가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특유의 시각이 있는데.. 어머니로서의 여성을 종종 구원과 연결짓는다는 점이다. (촌스럽게 일차원적으로 연결짓진 않는다. 은근히 그런 분위기를 풍길 뿐!)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섹스와 연결된다. 이 작품의 주제가 모성애적 구원은 아닌데도, 유난히 섹스와 출산과 무조건적인(구원에 잇닿은) 사랑을 구석구석에 반복배치하고 있어서 눈에 띈다. 그런 작가의 시선이 너무 강해서일까? 소설 속의 여자들은 모두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술집 마마도 명랑한 어머니도 괄괄한 여동생도 남편을 죽인 기구한 여자도 화형당한 신원불명의 여자도, 모두 섹스와 출산과 모성애적 사랑의 범위 안에서 비슷한 색채와 풍미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비중있는 남자들은 모두 통과의례 같은 섹스를 거쳐간다. 남자들의 판타지인 걸까...? 자신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경외감에서 오는 판타지? 여자인 나에게는 그런 시각 자체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구원이라던가 생명의 탄생이라던가 출산과 섹스를 통해 꽤 거창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 모두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을 열심히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내 쪽이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연 '어머니'들의 감상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시즈토의 애도 행위가 그러하듯이 전체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장황하다. 600쪽 넘는 설명을 듣고서야 겨우 "괜찮네..." 할 만큼 장황하다. 그래서 작위적이란 말을 듣는게 아닐까 싶다.
<영원의 아이>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그때 보여준 치열한 리얼리티를 내심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텐도 아라타는 작중 이야기가 실제인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자료를 모으고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충격적인 리얼리티가 분명 여기서도 나타날 거라고 기대했나보다. 그러나 10년 이상의 세월이 텐도 아라타를 둥글게 만들었는지, 예전처럼 내면 깊숙이를 푹 찌르고 들어가는 파격은 없었다. 물론 그는 계속해서 구원과 사랑과 삶과 죽음을 말하고 있지만(어쩌면 더 깊이 말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분리된 느낌을 주었다. 머리로 쓴 가짜 이야기 같았다, 내겐. 인물들이 똑같이 피폐하고 건조한 내면을 드러내도 어쩐지 <애도하는 사람>은 가짜 같았다. 어쩌면 내가 상업적인 이야기 틀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든 많이 아쉽다. 물론 죽음은, 남의 일일 때보다 내 일이 될 때 더 잔잔해지는 면도 있다. 너무 강한 충격과 슬픔은 오히려 고요한 형태를 지니게 되니까.. 그런 의미에선 이 작품도 지나치게 사실적일지 모른다. 다만, 그것이 보통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과 동떨어져 있다는게 아쉬운 거다. (어차피 구도자적인 삶이란게 현실에서 조금 붕 떠있기 마련이듯이...) 특히, 생명을 잉태하고 계속 의식할 수밖에 없는 시즈토 여동생이 어머니의 죽음에만 매몰되어 활기를 띠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에 가까운 인물이 그녀인데, 보통 사람을 대변하고 그들이 감정이입할만한 인물이 그녀인데 그저 죽음의 주변인으로만 그려진듯해 아쉽다.
작가의 목소리만이 오롯이 들려오는 소설.
그 목소리는 따뜻하고 꽤 괜찮지만, 여성으로서는 공감대가 떨어지는 면도 있고
전반적으로 인물이나 설정이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강하게 드는 소설.
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누군가를 기억하는 훈훈한 세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좋은 소설이지만
두루 좋아할만한 소설은 아니다.
내게는 <영원의 아이>가 영원히 그의 대표작일 것 같다.
<리큐에게 물어라>와 같은 해 나오키상 공동 수상작이기도 하다.
공동 수상이라면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둘 다 너무나 빼어나거나, 아니면 둘 다 한방이 약하거나.
리큐는 안 읽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내 멋대로 후자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이 책이 대단히 괜찮은 생각을 풀어내고 있지만 이야기적인 재미는 떨어지는 소설이었기에.
이야기적인 재미라 하면 치밀한 구성의 묘라던가 등장인물의 개성, 몰아치는 사건, 그 사건에 휘말리는 사람들의 화학작용 등등... 흔히 말하는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드라마틱함을 최대한 배제한 듯한 느낌이다. 주인공 시즈토가 그러하듯이 감정을 담담하게 억누르는 분위기가 전편을 관통한다. 그리고 이러한 금욕적인(?) 느낌이 소설이라기보단 작가의 철학을 설파한 책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렇다면 그 철학이 대단히 새롭거나 놀라우냐 하면... 글쎄, 내 마음을 울리거나 깊이 공감시키지는 못했다. 그냥 '괜찮다'. 죽음보다도 사람 자체에 주목하는 작가의 시각은 신선하긴 했다. 억울한 죽음이든 안타까운 죽음이든 그 죽음 자체를 떠올리기보다 망자가 어떤 사람이었느냐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에게 사랑받고, 누가 그에게 감사한 적이 있는지"를 기억하려는 시각은 사람의 본질을 파고들면서도 삶과 죽음에 대해 대단히 관조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좋고 나쁜 이야기가 드라마인데, 그 부딪침은 미뤄두고 인물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천착하는 것 자체가 관념적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태생부터가 드라마라기보다는 철학적인 이야기다, 이 소설은.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스포가 될 수도 있으니 건너뛸 분은 슉~)
자극적인 기사를 지어내는 주간지 기자 마키노는 취재 중에 우연히 알게 된 시즈토의 '애도'를 처음으로 인터넷에 공개한다. 그 짧은 만남 이후 마키노는 미워하는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그러한 애도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계속 자문한다. 그리고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 시즈토의 신봉자가 된다.
시즈토의 엄마는 말기암 환자로, 딸의 출산과 자신의 투병이 비슷한 양상을 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시즈토를 그리워하지만 스스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시즈토를 비아냥거리는 마키노의 방문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만 시즈토의 애도를 마음으로 지지한다.
남편을 죽인 죄로 형을 살고 출소한 유키요는 남편을 애도하는 시즈토를 무작정 따라나선다.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전남편의 환영을 떨쳐내고 생사의 의미를 구하려던 동행이 점점 그를 이해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결국 인간적인 삶보다 구도에 가까운 시즈토의 애도를 지지하는 시선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보다시피 특별한 드라마는 없다. 인물들의 삶은 나열되고 서로간에 얼마든지 뜨겁게 얽힐 수 있는데도 피해간다. 덕분에 중반 이후 흡인력은 있는데도 큰 재미는 없다. 작가가 설정한 '애도'와 그 행위자에 대한 설명만이 가득해서.
이야기가 뚝뚝 끊기는 느낌은 <영원의 아이>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그땐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서서히 전모가 드러나고 감정이 켜켜이 쌓여가는 구성의 묘가 있었는데... 이 소설은 주인공인 시즈토의 기행을 설명하는데 급급한 느낌이라 아쉬웠다.
남성 작가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특유의 시각이 있는데.. 어머니로서의 여성을 종종 구원과 연결짓는다는 점이다. (촌스럽게 일차원적으로 연결짓진 않는다. 은근히 그런 분위기를 풍길 뿐!)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섹스와 연결된다. 이 작품의 주제가 모성애적 구원은 아닌데도, 유난히 섹스와 출산과 무조건적인(구원에 잇닿은) 사랑을 구석구석에 반복배치하고 있어서 눈에 띈다. 그런 작가의 시선이 너무 강해서일까? 소설 속의 여자들은 모두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술집 마마도 명랑한 어머니도 괄괄한 여동생도 남편을 죽인 기구한 여자도 화형당한 신원불명의 여자도, 모두 섹스와 출산과 모성애적 사랑의 범위 안에서 비슷한 색채와 풍미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비중있는 남자들은 모두 통과의례 같은 섹스를 거쳐간다. 남자들의 판타지인 걸까...? 자신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경외감에서 오는 판타지? 여자인 나에게는 그런 시각 자체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구원이라던가 생명의 탄생이라던가 출산과 섹스를 통해 꽤 거창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 모두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을 열심히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내 쪽이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연 '어머니'들의 감상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시즈토의 애도 행위가 그러하듯이 전체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장황하다. 600쪽 넘는 설명을 듣고서야 겨우 "괜찮네..." 할 만큼 장황하다. 그래서 작위적이란 말을 듣는게 아닐까 싶다.
<영원의 아이>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그때 보여준 치열한 리얼리티를 내심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텐도 아라타는 작중 이야기가 실제인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자료를 모으고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충격적인 리얼리티가 분명 여기서도 나타날 거라고 기대했나보다. 그러나 10년 이상의 세월이 텐도 아라타를 둥글게 만들었는지, 예전처럼 내면 깊숙이를 푹 찌르고 들어가는 파격은 없었다. 물론 그는 계속해서 구원과 사랑과 삶과 죽음을 말하고 있지만(어쩌면 더 깊이 말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분리된 느낌을 주었다. 머리로 쓴 가짜 이야기 같았다, 내겐. 인물들이 똑같이 피폐하고 건조한 내면을 드러내도 어쩐지 <애도하는 사람>은 가짜 같았다. 어쩌면 내가 상업적인 이야기 틀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든 많이 아쉽다. 물론 죽음은, 남의 일일 때보다 내 일이 될 때 더 잔잔해지는 면도 있다. 너무 강한 충격과 슬픔은 오히려 고요한 형태를 지니게 되니까.. 그런 의미에선 이 작품도 지나치게 사실적일지 모른다. 다만, 그것이 보통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과 동떨어져 있다는게 아쉬운 거다. (어차피 구도자적인 삶이란게 현실에서 조금 붕 떠있기 마련이듯이...) 특히, 생명을 잉태하고 계속 의식할 수밖에 없는 시즈토 여동생이 어머니의 죽음에만 매몰되어 활기를 띠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에 가까운 인물이 그녀인데, 보통 사람을 대변하고 그들이 감정이입할만한 인물이 그녀인데 그저 죽음의 주변인으로만 그려진듯해 아쉽다.
작가의 목소리만이 오롯이 들려오는 소설.
그 목소리는 따뜻하고 꽤 괜찮지만, 여성으로서는 공감대가 떨어지는 면도 있고
전반적으로 인물이나 설정이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강하게 드는 소설.
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누군가를 기억하는 훈훈한 세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좋은 소설이지만
두루 좋아할만한 소설은 아니다.
내게는 <영원의 아이>가 영원히 그의 대표작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