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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해요~문화생활/일드

[모래 그릇] 砂の器 ★★★★☆

by 와옹 2008. 5. 9.
예전에 썼던 것을 옮겨보았다. (당분간 이런 놀이를 할 듯...^^ 날짜가 최신으로 되는 게 안습이지만..ㅜ.ㅜ)

모래 그릇 (2004)
주연 : 나카이 마사히로, 마츠유키 야스코, 와타나베 켄, 다케다 신지
웅장한 오케스트라 장면.
이렇게 손이 나오는 장면은 직접 연주했다고 하던데... 마지막회만인가..?
원래 피아노를 칠 줄 몰라 손가락을 외웠다고 한다. (2악장 20분짜리 연주를, 독하다..)
남녀 주인공.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이들의 사랑으로...
로맨스라 하기엔 너무 건조한 사랑이 오히려 운명처럼 느껴진다.
굉장히 독특하고 처절한...
지루할 정도로 담아내는 아름다운 풍경.
알고보니 [시로이 카게]랑 연출가가 같다. (이 연출가, 내년 코지군의 드라마 하던데...후훗, 기대)
클래식 선율과 함께 흐르는 풍광 또한 이 드라마의 볼거리.
멋진 형사 아저씨 역에 와타나베 켄.
사람들이 왜 형사 아저씨에 감탄하는지, 보고나면 안다.
튀지 않으면서 묵직한 연기가 멋지다.
그러면서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다.


모래그릇은 일단, 총 11시간에 달하는 런닝타임을 고스란히 들여야만 볼 수 있는,
대단히 보기 힘든 드라마다.
빨리 감거나 중간에 딴짓하며 보는건 금물. 온전히 집중해서 볼 때에야 그 맛이 난다.
잠시 생각했다.
연기 좋고 음악 좋고, 그림 좋고 스토리 좋고, 여운까지 남으면 좋은 작품인가? (당연하다고?)
분명 이 작품은 2004년 드라마 대상인가 뭔가를 수상하고 남우주연상도 받았지만, 그건 1주일에 한편씩 감상할 때의 이야기고... 다운받아 보는 입장에선 이토록 느린 전개를 견디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의 여운이 더 강한 것도 있지만, 글쎄... 6화 끝무렵 부터 탄력을 받는 이야기는 좀 너무하지 않아? (흥미로워지는건 2회 마지막 부터지만..)

원작소설의 와가 에이료(나카이 마사히로 扮)는 2건의 계획살인을 하는 지능범이라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우발적 요소가 담긴 한번의 살인으로 끝나지만.. (한번이라고 그렇게 리얼하게 묘사할 필요는...-"-;;) 또, 같은 음악가라도 피아니스트(겸 작곡가)가 아니고 밴드 쪽이고, 마지막에 살인범이 드러나는 추리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는듯.

스토리는 대강 이렇다.
천재 피아니스트 와가 에이료는 지우고 싶은 과거와 연관된 인물, 미키를 살해한다.
살인현장을 벗어나던 중 부딪힌 여자 나루세 아사미(마츠유키 야스코 扮). 그녀가 자신을 기억해낼까봐 살의를 품고 주위를 맴돌지만, 그럴수록 과거의 자신과 겹쳐지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인간적인 형사 이마니시(와타나메 켄 扮)는 미궁에 빠진 이 사건을 아주 사소한 단서에서부터 추적해 나간다.
점점 조여오는 수사망과 정치인의 딸과의 보장된 미래 사이에서, 와가는 자신의 정체성과도 같은 곡 '숙명'을 써내려간다.

이 드라마의 숨은 주인공이 바로 교향곡 '숙명'이다.
시종일관 깔리는 이 클래식 곡은 절묘하게 드라마의 고저를 조율하고 있는데.... 그렇다는 것은 한편, 곡의 템포에 맞추느라 전개가 느려진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단 말씀?
하지만 이러한 부분이 자아내는 독특하고 예술적인 느낌은 근사하다.
많은 사람들이 절찬한 나카이의 장면.
개인적으로는 별로... 의미는 충분히 가슴을 울리지만.

나카이의 연기는 절찬을 받을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에는 대단히 잘 어울린다.
대사도 별로 없고 감정 표출도 거의 없는 와가라는 인물을, '단순한 악인인지 사실은 좋은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건 역시 연기가 좋은거겠지? 감정이 폭발하는 후반부의 연기도,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한 드라마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그런 호연이었다.
여주인공과 와타나베 켄의 연기도 같은 맥락으로.. 아무리 격해도 그것은 절규가 아닌 오열에 가깝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자신의 입장을 원망하고 있지만
결국 각자의 입장을 지켜낸다는 것이 인상적..
값싼 휴머니즘으로 흐르지 않고 현실감 있게 풀어낸 이야기가 긴 여운을 남긴다.
11시간을 고스란히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