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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해요~문화생활/한드

짠내 섭남과 담백 남주의 균열 : 드라마 <스타트 업, 16부작>

by 와옹 2024. 6. 17.

ㅋㅋㅋㅋ 진짜 오랜만에 글 쓰고 싶게 만드네.
워낙에 서브남주가 메인남주 잡아먹는 드라마라느니 김선호랑 엮였어야 한다느니 말이 많은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우선 드라마는 재미있었고, 2/3 지점까지는 논란에 공감하면서 작가를 변명해줄 수도 있을 정도로 균형감이 좋았다. 물론 초반부터 섭남 김선호의 매력이 압도적으로 풀리지만 남주혁의 상반된 매력도 괜찮았고, 말도 안 되는 오해의 전개가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시작부터 "왜 저래야 하는데?"의 연속이지만 그래 뭐 쫌 두고 보자, 할 정도의 재미를 준다. 그렇게 2/3 지점까지 작가의 메시지는 분명해 보였다. 과거와 현재, 누가 더 힘이 있을까? 그야 현재지.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지. 라고.
근데 3년 후로 가면서 막판의 메시지는 그냥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로 바뀐다. 
과거남과 현재남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할 줄 알았더니 3년 동안 옆을 지킨 과거는 계속 지지부진하고 현재는 공백이 있건말건 승자였다. 어차피 남주는 남주혁이라고 정해놓은 레일을 달리는 것 같아서, 너어어어무 재미가 없었다. 

작가는 로맨스의 클리셰를 깨고 싶었거나 아니면 어떤 이유로 뒤틀어야 했던 것 같다. 
왜냐면 1회가 '과거의 인연을 만난다'는 김선호의 운세로 시작해, 그 인연 수지와의 15년 전 사연을 실컷 풀고 수지 할머니랑 김선호의 찐한 재회로 끝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남주혁은 1회 맨마지막에 한컷 나오고 끝이니, 누가 봐도 남주는 김선호 같다. 

이후 김선호에게 몰아준 롤role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이와 엮어주는 <시라노>에 자기 정체를 말 못하는 <인어공주>의 짠내, 숨은(?) 조력자로 물심양면 애쓰는 <키다리 아저씨>까지 아주 매력 철철이다. 여기에 천애고아란 슬픔 + 자수성가 능력캐 + 주인공들의 멘토 + 맨날 고백 타이밍 놓치는 억울함 + 남주의 전매특허 '아파서 죽 얻어먹기'까지 전부 김선호가 해먹는다. 그의 유일한 단점은, 처음에 거짓말로 관계를 시작한 것과 자기 감정을 제때 표현하지 못한 것 딱 2가지인데 사실 거짓 관계의 잘못은 할머니나 남주혁이 더 크다(오해 끌기의 주역들). 남주혁은 '남의 것을 뺏은' 열등감이 크게 부각되는 존재인데, 사실 그것 외엔 단점이 없고(공감 부족 공돌이 캐릭도 슬그머니 사라지는..), 장점 또한 자기 감정을 제때 표현하는 것 하나뿐이다. 

굉장히 복잡한 서브남과 굉장히 단순한 남주. 
심플한 게 힘이 있다지만 이건 좀 너무 심플하다. 남주혁의 키워드라면 '고지식 천재 능력캐' '성장캐' 이것뿐이고... 젊은 패기? 순수남? 아무리 끌어모아도 이 정도가 매력의 전부다.
결핍도 별로 없다.
돈과 사업머리는 없지만 능력 있지 젊지, 사업자금 대준 부모님 있지 친구들 있지 여자도 사귀지, 그는 다 가진 사람으로 보이다가 끝에는 더 가지고 끝난다. 
반면 김선호는 대단한 능력과 사회적 위치, 재력이 아무것도 아닌 걸로 여겨질 만큼 주변에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인공지능 영실이랑 할머니랑 회사 동료(라기엔 상사와 부하)가 전부인 외로운 사람이 끝까지 외롭게 끝난다. 잠시 여주의 가족과 행복한 한때를 보내지만 성냥팔이 소녀의 환상처럼 허무하게 꺼져버리고...ㅠㅠ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었네. 김선호의 결말을 보며 생각했다.
김선호에게 다른 여자를 붙여주었다면 그건 더 싫었겠지만, 빈익빈 부익부로 끝나는 이 스토리가 상당히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소극적인 남자보다 적극적으로 옆에 있어주는 남자가 더 좋은 짝이다, 라는 건 현실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백번 돌봐주는 것보다 한번 옆에 있어주는 게 더 좋은 짝이다, 라는 것도 지극히 옳다. 
하지만 드라마의 판타지는 김선호에게 올인되어 있는데 시청자가 그걸 어떻게 납득해? 
과거의 소중한 인연인데 중반까지는 말도 못해, 마음은 깊어져, 초딩 같은 애들 끌고 가느라 욕만 먹어(근데 멋져), 그렇게 짠내 풍기다가 중반 이후로는 그저 한없이 배려하고 양보해주고 아낌없는 나무가 되었더니 새들이 다 떠나... 어쩔. (그래서 영실이의 의인화가 등장했을 땐 차라리 둘이 잘 되라고 응원할 뻔했다)
아니, 대체 3년 동안 김선호랑 수지는 과거 얘기 한번도 안 했냐고? 옛날에 너 이렇게 말한 거 기억해 나 그때 이런 일 있었어, 그동안 어떻게 살았고 15년 전엔 어떤 일이 있었던 거니 뭐 이런 얘기 하나도 안 했냐고! 백번 양보해서 수지는 과거의 감동이 되살아나 둘 사이에서 매우 갈등해야지! 왜 배신감에 남주혁 쳐내고 남주혁 그리워하냐고... 옆에서 쿨하게 고백한 남자 관리하면서. 

그러니까 이 드라마에서 한지평(김선호) 파인 사람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바로 저런 불공평함이다. 그냥 수지는 이미 맘이 하나야. 김선호의 지지부진함? 그런 건 핑계고. 안전지향 김선호와 모험지향 남주혁 중에 모험이 좋은 파트너인 것처럼(정확히는 '뭘 하든 난 네 편') 몰아가는 것도 불편했고. 이미 고백한 김선호에게 3년 동안 아무 대답도 안 준 수지도 기막히고. 좋아하는 거 뻔히 보이는 남정네가 송편까지 빚으러 집에 오는데 온리 가족처럼만 대하고 아무런 푸쉬도 안 하는 수지의 가족들(할머니 포함)도 이상하고. 그냥 다 남주혁에게 몰아주기 위한 장기판 위의 말들처럼 불공평했다. 

그럴 거면... 그렇게 김선호에게 매력 몰아주지 말지이! 
젊고 올곧은 거 빼면 시체인 그런 남주를 만들지 말았어야지이이!
김선호에게 과거사를 주지 말던가 멘토를 시키지 말던가, 서브남에게 홀딱 빠지게 한 뒤에 팽하는 게 무슨 짓이냐아아아앜!

뭐... 그렇다. 3년 후 이야기는 워낙 재미없어서 김선호 나오는 데만 휙휙 봤다. 내 시간이 좀 아깝더라고, 남주여주 재회서사는. 안 봐도 본 거 같고, 대충 봐도 드라마를 오해하진 않을 거 같다.
그래도 김선호는 즐거웠다. 할머니랑 영실이도.
김선호는 주연작인 <갯마을 차차차>가 최고지만 <스타트업>도 못지 않게 매력을 뽐낸다.
두 작품 모두 짠듯이 복수 에피를 넣고 "화낼 사람이 필요했나봐요" 라는 용두사미로 헛웃음을 주고.
두 작품 모두 짠듯이 김선호가 저 외모로 모솔이고 부모형제 없고 능력 만렙이다. 
다 보고나면 두 작품이 김선호가 사회에서 성공한 경우, 실패한 경우의 평행세계 스토리 같기도 하다... ㅋㅋ
어쨌든, 김선호 보려면 화나도 볼 만한 드라마. 수지 팬에게도 추천. 매력 있게 잘하드라.
남주혁 팬과 강한나 팬은 쏘쏘. 둘 다 괜찮지만 아는 맛. 
스타트업 스토리는 게임 같지만 볼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