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방치한 지 너무 오래라, 드라마 리뷰를 쓴다는 게 낯설고도 멋쩍다 ㅎㅎ
그런데 리뷰하고 싶게 만든 문제작이 나왔으니, 바로 대만드라마 <상견니>의 리메이크작인 < 너의 시간 속으로>. 줄여서 너시속이다.
<상견니>의 팬들은 너시속을 보고 99% 실망하는 것 같다. 나는 이걸 보고 원작을 볼 마음이 들었는데! 안타깝게도 원작 1회를 넘기지 못하고 손을 놨다... 드라마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이 원작과 리메이크 모두 3회부터라고 하는데, 너시속(한드)은 재미 없어도 계속 호기심을 유발하는 반면, 상견니(원작 대드)는 디테일 쌓느라 빙빙 돌아가는 게 보이는데 그 방식이 <겨울연가> 시절의 한드를 보는 듯해 견디기가 어렵.....더라고, 난.
여하튼, 이걸 견뎌야 할 것인지 궁금해서 리메이크와 뭐가 얼마나 다른지 검색해봤다.
대충 검색해보니 아래의 내용들.
1. 줄거리는 거의 똑같다
- 직업 설정 등 소소한 차이만 있을 뿐, 인과관계와 사건, 타임슬립 세계관, 감정선, 결말 동일
2. 타임슬립은 한드 리메이크 쪽이 훨씬 깔끔하고 이해하기 쉽다
- 원작에는 멍청구간(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의밐ㅋ)이 존재한다고 함.
3. 범인은 일부러 다르게 갔다고
- 그러나 방식은 동일. 걍 훼이크 정도인 듯.
4. 리메이크 남주 비주얼에 대한 분노 ㅋㅋㅋㅋㅋ
- 원작 비교글 검색하다 이 불만이 제일 핫해서 웃겼다.
남주에게 총 3가지 비주얼이 나오는데, 그 중 젤 나이 많은 비주얼(아프지만 젠틀맨)을 한드에선 노숙자를 만들어 놨다고 분노ㅋㅋㅋ.
근데 그 노숙자 계속 보니 멋있던데요ㅋㅋㅋㅋㅋ 갠적으론 저렇게 불쌍하게 나이든 게 캐릭터 감정선엔 더 맞다고 봄.
5. 리메이크가 애절함이나 풋풋한 첫사랑의 청량함, 갬성갬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평. (이 부분 때문에 원작이 궁금했음)
6. 리메이크가 디테일이 떨어진다 함.
7. 32레코드가 27레코드로 바뀜.
- 32라는 숫자가 내포하는 핵심적인 정서는 '불가능함' 같다. 존재하지 않는 32일 처럼 불가능한 사랑의 이야기... 뭐 그런 정서. (+게다가 주제곡이 총 32번 나온다던가 그 음악의 활용이 감정선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준다던가 하는... 정말 몰라도 그만인 깨알 디테일 + 풍부함을 더해주는 디테일이 <상견니>의 강점이라고 한다)
- 반면, 리메이크의 27은 27세에 요절한 뮤지션들(27클럽이라나..)을 테마로 하여, '안타까운 죽음. 하지만 계속되는 사랑'이라는 정서를 낳는다. 근데 뭐 걍 그런가부다 하는 설정으로 그쳤다. 보는 내내 군더더기라고 느낄 정도로 이 설정을 활용 못함. (다만, 활용 못한 것과는 별개로 착안점은 아주 좋았다.)
8. 캐릭터의 변화, 감정선의 변화
- 이건 감독 인터뷰에서 본 건데, 스스로 원작과 다르다고 여긴 부분이 캐릭터라고 한다. 한국식 정서로 바꾸는 과정에서 조금 달라졌나 보다.
원작팬들은 '소년미' 뿜뿜한 고딩 시절 남주가 밋밋하게 다운그레이드됐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리메이크만 본 나는, 안효섭의 덩치(근육질)에 소년은 무리라고 한눈에 그냥 납득해버렸다. 오히려 어른스러운 듯하다가 가끔 생각 없이 실실거리는 포인트가 고딩같아서 좋았다구~~! ㅋㅋ
대략 이런 것들이 쟁점으로 언급되었다.
드라마에 대한 나의 평가는 글쎄?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몰입도가 좋으나 여운은 없다?
(꽤나 재밌게 봐놓고 이럼...ㅋㅋ 그 이유는 아래에.)
※이하 스포 잔뜩이니, 두 드라마 중 하나라도 다 본 사람들만 읽길 추천.
친절한 줄거리 설명 없음 ^^
리메이크 한드를 보면서 디테일의 부족을 느끼긴 했다. 인물들의 애절함을 이야기가 따라오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 많이 아쉬웠고, 전개와 감정선이 타당하고 자연스러운데도 뭔지 모르게 허전했다.
남주여주의 케미가 어쩐지 찰싹 붙지 않는다. 안효섭은 최근작에서 러브라인이 돋보였던 배우고(낭닥2,3. 사내맞선), 전여빈과 둘이 연기를 못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근데 케미는... 남친 여친 따로 있는 사람들이 로맨스 찍은 느낌이랄까.
인물들이 납득되는데 깊이 붙진 않는 느낌. 이유가 뭘까... 궁금하자나.
그래서 <상견니> 1화를 호기롭게 틀었다가 앞서 말한 이유로 조용히 보다 말았..지만, 원작드라마가 어떤 미덕을 가졌을지 약간 감이 왔다.
<상견니> 1회를 보면 의미심장한 복선들을 처음부터 열심히 깐다. 32라는 숫자, 추리의 요소, 그리고 닮은꼴 찾기 앱.
→이 드라마의 타임슬립 조건 중 하나가 어느 시기, 닮은꼴의 몸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나 미래로 가는 <백투더퓨처>가 아니다!) 그리고 그 닮은꼴이 죽으면 원래 몸으로 회귀한다.
→중드에서 흔히 보이는 설정으로, <보보경심>에서 여주가 과거의 인물 몸에 들어간 것을 떠올리면 되겠다.
닮은꼴찾기앱이라는 설정은 시청자에게 이 판타지의 법칙(닮은꼴 몸에 타임슬립)을 납득시키는 하나의 요소가 되는데, 리메이크에선 이런 걸 다 뺐다. 솔직히 이 앱이 스토리에 크게 기여할 것 같진 않다. 군더더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복잡한 판타지에서 이런 사소한 디테일이 설득력을 더하고 정서적으로 밀착하게 만들기도 한다. 너시속은 시청자가 차근차근 스며들 수 있도록 실마리를 던져 주는 <상견니>의 방식 대신, 뭐야뭐야? 어떻게 된 거야?를 속도감 있게 쭉쭉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설명은 거침없고 간결해서 상쾌할 정도지만 궁금증이 해소된 후엔 급격히 동력을 잃는다. 간결함을 택한 탓에 주인공들의 감정이 풍부하게 쌓이질 못했고, 그렇게 인물의 감정에 착 달라붙지 못한 채 이야기는 스릴러로 전환된다.
(노숙자 비주얼 죽었을 때 허탈했던 거 나뿐임? 나 이제 그 비주얼에 적응하고 이제야 그 인물의 슬픈 역사를 느껴보려고 하던 참이었다고. 근데 그걸 죽이고 있냐 이놈들아아!)
너시속은 시종 이런 식이다. 한준희가 씌여서 달라진 권민주를 놓고 절친 둘이 사랑의 갈등을 겪는 국면이 완화되자마자, 권민주 안에 한준희가 들어앉았다는 걸 남주가 인정하자마자, 러브라인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스릴러 사건을 던져버린다. 전개가 팍팍 되니까 재미는 있는데 고딩 럽라 좀 더 보여주지, 마구마구 아쉬운 거다. 좋아, 그럼 으른의 사랑이라도 찐하게 가보자~! 기대했더니 사랑이 별로 깊어지질 않아...-_-; 베드신이 있기를 하나 그냥 운명적 들이댐을 받아들이는 과정만 나오고(고딩 럽라 시즌2) 둘 사이엔 죽음 전까지 큰 갈등도 없다. 그렇게 부족한 사랑의 서사를 가지고 살인사건과 타임슬립에 휘말려 봐야, 목숨 걸고 뱅기 타 봐야, '애걔?' 하는 마음이 들게 되는 것!
추측컨대 <상견니>는 이런 아쉬움을 충분히 채워놓고 사건을 전개했을 거다. 사랑을 충분히 보여주고 미묘한 갈등도 충분히 보여주고, 복잡하건 말건 늘어지건 말건 시청자를 남주여주의 사랑에 콱 밀착시킨 다음에 국면이 바뀌었을 거다. (분량도 훨씬 기니까 안 그랬을 리가 없다.)
깔끔하고 이해가 쉽다는 게 너시속의 최대 장점이라면...
여운이 남지 않는다, 이게 너시속의 최대 단점이라고 생각된다.
근데 사실 난 이 드라마 상당히 재미있게 봤다.
이틀에 다 보고 친구에게 권할 만큼 재밌었고, 12화 중에 8,9회 정도는 스트레스 없이 쭉쭉 봐져서 그게 좋았다.
이중 삼중 사중 복잡한 타임슬립을 깔끔하게 설명한 것도 놀라웠고
4계절을 다 담은 풋풋한 영상미와 배우들의 미모는 유쾌상쾌청량했거든.
그래서 리뷰를 쓰기로 한 것도 이 리메이크작을 옹호해 주고 싶어서였다. 이것만 보면 재밌어요~ 하려고 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다음날이 되자 그 예쁜 장면들 다 생각 안 나고 부정적인 단점들만 떠오르는 거다.
아니 진짜 재밌게 봤는데 왜;;;
로맨스 원작을 스릴러로 풀었다는 평이 있던데, 후반 3회를 꿀꺽 말아 드신 그 스릴러가 나도 좀 별로긴 했다.
스릴러는 신박하지만 좀 짜치고 짜증나고, 소심한 인물의 내면을 저렇게 음침하게밖에 못 그리나 싶은 불만, 그리고 내가 '일본식 결말'이라고 부르는 모든 게 없던 일이 되는 엔딩과 막판을 지배한 음울한 정서. 예쁜 후일담으로 수습하려 했지만 기억나는 건 울부짖음과 + 허망함뿐.
그러니까 애틋한 여운 대신 마이너스 기분이 강렬하게 남는 것... 이것이 리메이크작의 치명적 단점이라고 본다.
아니! 그것까지도 다 좋다 쳐! 왜 결말까지 원작 그대로인데?
모든 걸 무로 돌리는 결말은, 적어도 이 리메이크에선 아무 힘도 쓰지 못한다. 눈물도 안 나고 아름답지도 않단 말이다...!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건 대단히 희생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상실의 순간만 지나면 다 잊어버리니 아플 것도 없다.
아니, 기억만 못할 뿐 아프다고 치자. 그 아픔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데? 이유를 모르고 그저 견딜 뿐인 무력한 아픔. 그게 상실의 고통을 떠안고 새롭게 살아가려는 노력보다 가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상견니>를 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같은 결말이라면, 그 사랑이 애틋하고 아름다울수록 내가 느끼는 불편감도 커질 것 같아서다.
나는 모든 걸 무(無) 로 돌리는 결말을 정말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어쨌든, 오랜만에 이러쿵저러쿵할 드라마를 만나서 반갑다.
블로그를 안 하는 동안 숱한 명작들을 봤지만 그다지 감상평을 남기고 싶진 않았는데. 굳이 내 생각을 드러내고 싶은 드라마였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그리고 안효섭. <사내맞선> 때 존잘이라고 생각했지만 배우로서 매력을 느낀 건 이 작품이다.
(유튜브에서 띄엄띄엄 본 <낭만닥터김사부>2,3의 서우진이 안효섭의 인생캐일 것 같지만,)
내게는 안효섭의 재발견, 연기력의 물음표를 떼 준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