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 140분
한국, 시대극
원작 김훈 作 소설 <남한산성>
각본감독 황동혁
출연 이병헌(최명길 역), 김윤석(김상헌 역), 박해일(인조 역), 고수(서날쇠 역), 박희순(이시백 역), 조우진(정명수 역) 외
한마디로... :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와 신하들이 항전이냐 항복이냐를 놓고 대립하다 새우등만 옴팡 터뜨리는 이야기..-_-;;
주연급이 떼로 나오는 영화는 위험하다.
이 영화도 중반까지 졸음을 부르는 지루함을 안겨주며 이 배우 저 배우 나열하듯 보여주더니, 중반 이후로 대립이 격화되면서 비로소 각자의 존재가치를 드러낸다. 주조연을 안 가리는 그들의 열연 덕에 결론적으로는 좋은 영화로 끝을 맺었으나..
지루하단 평도 맞고 좋다는 평도 맞는 절반의 성공작.
후반부는 긴장감도 돌고 좋았지만, 그럴 때마다 원작의 존재감이 느껴지며 오히려 김훈이 왜 그토록 사랑받은 작가인지 알겠더라. 보통 무능하고 야비하게 여겨지는 인조와 꽉 막힌 김상헌, 최명길을 인간적으로 그려낸 것이 그렇고, 입으로 싸우는 양반들과 사지로 내몰리는 백성들을 거듭 대비하며 모든 걸 갈아엎지 않고는 계급간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없다는 통찰 등이 그랬다.
오랜만에 담백한 이병헌의 정적인 연기와 폭발하지 않고 끓어오르는 김윤석의 에너지가 좋았던 영화.
박해일의 인조는 무능한데 너도 답답하겠다 싶었고,
중간까지 설마..했던 고수는(진짜 고수였어!) 지금껏 본 중에 가장 인상적인 존재감을 남겼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주길~!)
완벽한 조연이었던 박희순은 특유의 존재감으로 극을 받쳤고, 영의정으로 나온 송영창은 뻔하지 않게, 사람 속 터지게 하는 무능의 표본을 보여주신다.
정명수 역의 조우진은 (내부자들에 나왔던 그 비서 맞지?) 시원스런 발성으로 어색한 청나라 대화 씬들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연기 잘하심~. 류덕환인가 했던 칠복이 역의 이다윗도 제몫을 다했고, 요즘 대개의 영화가 그렇지만 연기 구멍이 없더라.
그러나 다 좋은 와중에 가장 빛나는 건 역시 김윤석. 실로 오랜만에 김윤석의 이름값을 느꼈다.
임금 앞에서 살고 죽는 길에 대해 이병헌과 주고받는 대목은 잔잔한 혈투를 보는 듯 했음.
실제로 김상헌은 죽지 않고, 훗날 청나라 감옥에 최명길과 나란히 갇혀 그제서야 서로의 충절을 깊이 깨닫고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최명길이 지은 시는 두 사람의 대조적인 성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대의 마음 돌과 같아
끝내 돌리기 어렵고
나의 도는 고리와 같아
경우에 따라 돈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인조 편>에서
목숨이 아깝지 않았던 그들은 시대의 충신이었지만
기개만 빼어났을 뿐 그 또한 무능한 위정자들이었다.
그 무능함에 희생되고 스스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의 생명력이,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유일한 희망인 것 같아 슬프다.
그리고 늘 강대국 사이에서 치여야 했던 우리의 역사가 서글프고
살아남은 것이 경탄스럽다.
오늘날까지도 새우등 국가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지만,
"안에서부터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또다시 버텨내리란 막연한 믿음도 생긴다.
그저 그 과정에서 국민을 최우선으로 섬기길 바랄 뿐..
눈 덮인 남한산성의 풍광과 서정성이 참 좋았고
함께 본 두 할머니께서 나보다 더 재밌게 보신 듯해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