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 - 유비 - 조조 - 손권 - 주유
랑야방을 보면서 아기자기한 삼국지 같다 생각했는데
최근 중드 삼국(신삼국지,2010년,95부작)을 보니 정말로 비슷한 데가 많다.
삼국지의 인물관계를 따온 게 아니라면, 랑야방 작가는 삼국지의 애독자일 거야! (아닌 사람이 드무려나? 중국작가면...)
매장소의 그 우아함과 수려함! 넘사벽의 지략에서 제갈량의 향기가 난다 했더니
답답하리만큼 정의로운 정왕은 인의도덕을 내건 유비의 계승자더라.
나보다 잘난 놈을 못 보는 경계심 많은 황제는 조조랑 좀 비슷한 구석이 있고
태자, 예왕, 정왕의 삼파전은 위촉오의 삼국 구도와 닮았으며 (20대 총선 이후 우리 정국도....)
최약체에 몸 둘 곳도 없던 유비가 30여년에 걸쳐 패권에 다가가듯 찬밥이던 정왕이 2년 간 도약하는 것도 유사한 흐름.
와룡과 봉추 중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얻는다던 그 와룡 제갈량이나 그를 얻는 자 천하를 얻을 거라는 기린재자 매장소나 다 도도하게 주인을 골라놓고는 결코 그 위를 넘보지 않는 충신들이고
속을 알 수 없는 귀신같은 지략가지만 번번히 제갈량에게 발리는 사마의는 현경사의 하강과 겹친다.
하지만 뜯어보면 그렇다는 거지, 랑야방의 메인 플롯은 (어찌 됐든) 복수극이라 한눈에 삼국지를 떠올리게 되지는 않는다. 매장소 같은 넘사벽 책사가 어디 제갈량뿐이겠으며 제갈량에서 파생된 캐릭터도 한둘일까. 내 아무리 매장소를 제갈공명의 몽테크리스토 백작 버전이라 여겨도 그건 원형적인 얘기일 뿐인데 그런데, 응...? 외골수 정왕과 매장소의 조합에 이르면 "이건 유비와 제갈량이잖아!" 외치고 싶단 말이지.
정왕은 그야말로 유비의 현대적 해석이라 할 만한 게, 니 그 인의 따지다 다 죽겠다! ...싶은 답답한 국면이 두 작품 모두에서 나온다는 거 ㅋㅋ 솔직히 정왕의 단순무식한 전우애도 쫌 민폐일 뻔했는데 유비는 훨씬 더해! 정왕은 겉과 속이 같기나 하고 술수를 질색하기나 하지, 유비는 꽁꽁 감춘 야심을 아닌 척하니 삐딱하게 보자면 저만 깨끗하려는 위선자 같을 지경. (드라마에선 후덕하게 나와요~ 나오지만~)
유비가 인의로 사람을 얻듯 정왕은 공명정대함으로 측근을 얻고, 공명이 형주-서천-천하를 취하는 3단계를 제시하듯 매장소도 육부와 병권을 땅따먹기해 정왕의 발판으로 삼는 단계를 밟아나간다. 뭐, 지극히 상식적인 수순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과정이 2년에 걸쳐 진행된다는 느긋함(?)이 삼국지스럽다. 공명이 세상에 나오고도 30년 넘게 이어진 삼파전이 랑야방에선 단 2년에 끝날 수 있었던 건, 나라 간 전쟁과 황자 간 암투에 저당잡힌 목숨의 규모가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겠지.
<랑야방> 정왕 - 매장소 - 예황군주
천하의 규모를 금릉과 황실로 축소한 랑야방은 그래서 더 섬세한 인물관계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고, 그 결과 러브라인이 낄 자리가 생겼다. 제 아무리 현명하고 용감해도 삼국지 속 여인들은 남자의 앞길을 흐리는 존재로 전락하기 일쑤라(전쟁터에 여자들이 올 일이 없으니...) 사랑이 끼어들 자리는 거의 없다. 그래선지 랑야방의 예황군주나 궁우낭자는 아예 장군과 자객이라는 전투력을 장착하고 적극적으로 이야기 속에 들어오는데, 여기서도 사랑의 자리는 재회하기 무섭게 황릉으로 보내지는 수준... ㅋㅋ 궁우낭자의 병사 참전은 정말 ㅠㅠ 이야기 안에 사랑의 자리를 내주기 위해 고군분투한 랑야방이심.
그렇게라도 표현된 사랑은 주인공의 인간적인 고뇌를 한층 이해하게 만들고, 그 고뇌를 이해하는 주변인들의 한결같은 애정과 혼자만 몰라주는 정왕이 안타까워 우리는 매장소가 소경예의 뒤통수를 치건말건 기승전종주님을 부르짖게 되는 것이다... 종주니임!! 이런 섬세한 감정선 삼국지엔 없다고요~.
예왕.. 아니고 주유
제갈량 공명
대신 삼국엔 랑야방에 2프로 부족한 미남들이 계시짐! ㅎㅎㅎㅎㅎ
내 눈에 들어온 건 주유와 공명이었지만, 여포나 조자룡도 미남이고, 심지어는 유비랑 조조도 뜯어보면 잘생겼다! 랑야방 배우들은 다른 데서 훤칠한 거 보고 깜놀했는데... 내 눈이 대륙의 기골에 적응한 건가 삼국의 배우들은 아저씨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훨씬 잘생겨 보인다. 그 가운데서 공명은 어쩔 수 없이? 당연하게도? 군계일학. (포청천의 전조와 같은 임팩트!)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내가 제일 이해 안되는 게 또 제갈량이다. -_- 감정선을 따라가는 인물이 아니어서 가끔 감정을 터뜨릴 때 정확히 어떤 심정인지 모르겠더라. (원래 넘사벽 천재들은 이해하기 힘들지...가 아니고;;;)
우화위(우허웨이)가 연기한 유비는 참말로 유비스러워서 성인군자와 야심가 사이를 납득되게 표현했는데, 그런 유비에게 감동하는 공명이 좀.. "엥? 저 대목에서 감동했다구?!" 당황스런 때가 있었다. 어디선가 읽기론, 제작진이 공명을 신선처럼 그리고 싶었다는데... 난 공명이 고결한 건지 인간적인 건지 헷갈려서 감정이입이 잘 안 되더라. 주유의 빈소에서 보인 눈물과 일장 연설은 뻔뻔함의 극치로 보였는데, 관우장비의 괴롭힘에 눈물짓던 건 또 여려 보이니. 다양한 모습을 보이지만 설명이 부족한 느낌. 그래선지 제갈량은 감정선이 간결한 후반부가 훨씬 와닿는다. 마지막에 상방곡에서 비가 내릴 때는.. 주인을 만났으나 때를 만나지 못했다는 그의 운명이 참 안타까웠음... 육의(루이)가 연기한 제갈량이 비록 애매한 인간미를 자랑하긴 해도, 젊은 시절부터 나이든 모습까지 차분하게 연기해낸 것은 박수를 쳐주고 싶다. 잠깐 삼고초려 때의 모습이 플래시백으로 끼어들 때 나도 모르게 와, 저 땐 젊었구나...라고 생각했으니까. 늙은 연기 잘못하면 우스워지는데(나이 오십에 과도하게 늙었다는 것은 제껴두고) 참 자연스러웠다. 더구나 본인 목소리~!
그런 제갈량 때문에 홧병 나서 죽는 주유(황유덕=황웨이더 扮)는 (아니 화살독이 원인인데 왜 제갈량이 치명타가 되냐고ㅋㅋ) 극에서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우정 나오지, 사랑 나오지, 권력 쩔지... 그래놓고 하늘이 주유를 내고 어찌하여 또 제갈량을 내었는가, 라는 탄식으로 끝난 인생. 오만방자할 정도의 넘사벽 카리스마가 제갈량 앞에선 어린애 취급을 당하고, 그걸 극복하고자 말 그대로 피를 토하는 노력을 하지만 끝내 넘지 못하는 안타까운 영웅. 드물게 아내 사랑을 보여주는 인물이며(뭐 미개한 수준이긴 합니다만;;) 제갈량이 치사해 보일 만큼 강직한 인물이었다. (사실, 주유가 쓰는 계책도 치사하고 못됐는데 제갈량이 뒤통수 치고 약올려서 더 치사해 보임...-_-;; 삼국지는 참 치사한 이야기였음)
주유의 분량은 전체의 1/3 정도지만 존재감과 임팩트는 상당했다. 이 드라마에서 다섯명만 추린다면 저 포스터의 다섯명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손권의 책사이자 주유와 제갈량 사이에 낀 똑똑한 새우 노숙(곽청=훠칭 扮)도 참 매력적이었다. 그의 입을 통해서 주유와 제갈량이 더 깊이 이해되는 한편, 그가 있어서 둘의 비범함이 부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두 사람보다 못한 재주를 쿨하게 인정하는 걸출한 인재♡. 이 세사람이 오가는 장면들이 난 참 좋았다. ^^*
진건빈(천젠빈)이 연기한 조조는 (유비가 그랬듯이) 원래 조조가 저랬을 것 같은 호연을 펼친다. 뭐가 대단히 인상적이라기보다는 그냥 조조 같고 유비 같다. 둘 다 결함이 있지만 둘 다 영웅으로 보이니 신기하다. 조조는 최근 영웅으로 재해석되던 것과 달리 간웅의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독사 같은 야비함이 아니라 당당한 나쁜 놈이라 캐릭터는 능글능글 여유만땅. 근데 난 이게 넘 그럴듯한 거 같공~. 제갈량과 주유를 보려고 시작한 드라마였지만 조조와 유비에게 저절로 몰입하게 된다. 격렬함만이 연기의 능사는 아님을 이 두 배우가 보여주더라...
조조
유비♡
딱 봐도 그 삼형제
삼국지를 유관장 삼형제의 이야기로 알던 사람에게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여기서의 관우 장비는 상당히 결함 많은 온리 큰형님바라기로 그려진다. 멋있기가 시적으로 추앙되던 관우가 상당히 오만하게 그려지는 게 새로웠고, 장비는 멍청하기 직전의 다혈질로 그려져서 둘 다 큰형님의 자랑이자 걱정거리들... 결국엔 그 결함들 때문에 망한다. 제갈공명과 대립하는 씬은 원작과 다른 부분이라던데, 극의 흐름상 그들의 질투가 설득력은 있지만 관우 장비의 매력도는 여기서부터 하락해 죽을 때 별로 안타깝지 않았다...ㅠㅠ
이 드라마는 원작(삼국연의)에 비해 제갈량은 넘사벽 느낌이 덜하고 손권은 꽤나 현명해 보이는 등, 넘치는 부분은 자르고 모자란 부분은 채우는 식으로 인물들의 캐릭터를 균등하게 맞춘 느낌이다. (삼국연의와 정사를 적절히 섞어서 재조명된 인물도 많고 아예 언급이 안되거나 합쳐진 인물도 많다고 함..) 그렇게 완벽한 선인도 악인도 없는 이 드라마판 삼국지에서 가장 흠결 없는 캐릭터는 조자룡이다. 충성! 하나로 똘똘 뭉친 근데 판단력도 신중한 멋진 남자. 혼자서 조조의 진영을 뚫고 갈 땐 진짜 후덜덜했다. 중국의 뻥은... 참말로....
삼국지도 그렇고 중국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유독 '하늘의 뜻'에 집착하는 걸 느끼게 된다. 인도에서는 흔히 '신의 뜻'으로 치환되는 인생무상, 진인사대천명 같은 관념들. 일을 도모하는 건 사람이고 뜻을 이루는 건 하늘이란 말처럼, 유독 허무한 결말이나 비극이 많다. 애먼 놈이 천하를 갖는 삼국지는 이 범주의 최고봉이 아닐까? 랑야방이 현대적이라고 느껴지는 건, 운명에 굴하지 않고 끝내 뜻을 이루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해피엔딩은 아니어도 주인공은 다 이뤘으니까. 운명에 지지 않은 느낌은 뜻밖에 중드에선 보기 드문 뒤끝이다. 신삼국을 보고 나면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운명인 것만 같으니...
책을 대신해서 보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설명이 부족한 대목이 많다.
제갈량의 남만 정벌이 통째로 잘렸다던가 하는 에피소드의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제갈량이 조조의 시로 주유를 자극할 때, 단어를 살짝 바꿔서 조조가 대교 소교를 탐한다는 뜻으로 바꾼 것은 책이 아니면 몰랐을 잔재미다. 아무래도 한글자막이 세세한 전략이나 싯구의 의미까지 전달하긴 어려울 터라(번역만으로도 감사하지), 결국 책을 다시 읽어야할 것 같다. ㅎㅎ 그래도 수많은 인물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건 드라마만의 강점! (원소와 원술의 관계나 손견-손책-손권의 왕권 라인은 드라마가 아니었으면 계속해서 헷갈릴 거야~)
그리하여 신삼국 추천! 길지만 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