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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책벌레/리뷰라 치고

<높고 푸른 사다리>

by 와옹 2014. 1. 26.

공지영 저

 

한국 소설을 읽어본 게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특히 동시대의 소설을 읽는 건 정말 한참만이라(발간된 2-3년 내에 읽은 책이 없는 듯) 참 새삼스런 감각이었다. 아, 소설이란 이런 거였지 이런 매력이 있었지, 한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글의 재미가 이런 거였지. 한국소설 읽는 재미를 되새긴 독서였다.

한편으론 "공지영이 이렇게 감성적인 작가였나?"라는 놀라움도 있었다.
이젠 기억도 안 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외에는 단 한 권도 읽은 적 없는 작가지만, 그런데도 매우 이성적이고 전투적이고 페미니스트적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래서 전반부의 감성적인 사랑 표현들은 하도 풋풋하고 말랑말랑해서 내가 그동안 편견을 갖고 있었구나 반성할 정도. 그러나, 내 이미지도 틀린 것은 아니었는지... 후반부는 논리적인 '썰'로 점철된다. 아아, 뭔지 모르게 공지영스러운 느낌. 푸하하.

이 작품이 지니는 엄청 좋은 메시지는 후반부에 구체화되는데, 안타깝게도 역사적 사실에 집중하느라 소설적인 재미는 급격히 떨어진다. 후반부는 르뽀인가, 싶을 정도. 그러나 실화에 기반한 그들의 사연이 소설 이상으로 아름다우며, 그 감동을 현시점을 사는 소설 주인공의 인생과 연결시키는 작가의 관점은 참으로 따뜻하다. 거룩한 신의 섭리.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이야기다. 근데, 그저 나는, 그 거룩한 이야기를 너무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듯이 풀어내는 작가의 방식이 뭔가 좀 미묘해서 웃음이 났다. 비웃음은 아니고 그냥 웃음이 났다. 작가의 기본적인 색채란 건가... 하고.

그래선지 이 소설은 굉장히 좋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내게 그리 큰 감명을 주진 못했다. 나는 조금 빈 듯하고 꼬치꼬치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좋거덩. 하지만 그래서 또 궁금해졌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순수한 감동으로 다가올 것인지. 혹은 나처럼 좋은 이야기네~하고 말 것인지.
그런 의미에서 주위 사람들이 한 번 읽어봤으면 하는 소설.
왜 읽게 했냐고 원망 들을 것 같진 않은.
여하튼 좋은 이야기다.

상투적이고 거룩한 덕담에 관한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