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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해요~문화생활/영화

<남영동1985> (2012)

by 와옹 2012. 11. 23.

감독  정지영
주연  박원상, 이경영 


기다리던 문제의 영화가 개봉했다.
시사회를 볼 기회도 있었으나 이래저래 내 스케쥴이 바빠 못보고 개봉날 보았다.
함께 간 사람들 모두 이 얼마만의 극장 나들이냐며... 팝콘 사고 즐거워하며 영화관에 들어갔는데...

아아, 영화에 대해 뭐라뭐라 말할 기력이 없다. 
뭐랄까. 정지영 감독님의 전작 <부러진 화살>이 젊은 세대에게 특히 충격적인 영화였다면,
<남영동 1985>는 전 세대에게 충격적일 영화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임산부나 애기엄마에겐 권하지 못하겠다... 생각했고 다 보고난 뒤엔 크게 흥행 못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잠시의 쇼크가 지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고문을 당한 것 같은 그 느낌을 나 혼자 알기는 억울한 마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하는 기분이 새록새록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영화, 전작보다 진화했다.
어느 감독이 '군더더기가 없다'고 했다는데 딱 그렇다. 영화는 쉽게, 효과적으로, 우리를 남영동 고문실로 데려다 놓고 김종태의 고통을 체험하게 한다. 15세 관람가답게 노골적으로 잔인한 장면은 없지만, 충분히 끔찍하다. 충격을 준다.

영화가 끝난 후 느끼는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안도와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이다.
내가 저 시대에 살지 않아서 다행이다. 저 시절에 대학을 다니지 않아 다행이다. 단단히 뒤틀린 이 나라의 독재정권과 내가 싸우지 않아도 되서 다행이다....
그런 후에야 저런 시대의 망령 같은 이가 강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는 2012년의 우리나라에 개탄하게 된다. 
도대체 이 나라는 '국가 부흥'이라는 기치 아래 얼마나 많은 국민을 희생시켜도 좋다고 여기는 건지...
그런 맥락에서는 지금이나 그 때나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우리들은 너무 많은 것을 모른 채 빨리 잊고 있다.

정지영 감독님은 이 영화가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건 야당을 찍어야 한다는 그런 노골적인 의미의 영향은 아닐 거 같다는 게 영화를 본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굳이 김근태 이근안을 김종태 이두한으로 바꿀 필요도 없었을 터. 좀 더 큰 그림에서 주권 행사와 민주주의에 대해 묻고 있는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 특히 이경영씨와 문성근씨의 연기는 소름끼치는 존재감을 발했고 박원상씨는 정말 온몸을 던져 열연을 펼쳤다.
명계남씨, 이천희씨를 비롯한 (미안해요 이름 몰라요ㅠㅠ)조연배우들도 처음엔 좀 어색한 것 같더니 다들 호연!
시사회처럼 우는 관객은 없었지만, 불이 켜지고 문이 열리고 엔딩크레딧이 흐르는 내내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엔딩크레딧에 흐르는 고문의 증언은 그냥 덧붙임이 아니라 "이 영화는 현실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에...


너무나 불편하고 불편하라고 만들었다는, 그래서 한번쯤 봐야할 영화.
이 시대가 어떤 빚을 짊어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도대체 자유민주주의란 뭔가?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행사하고, 지키고, 누리고 있는가...?

 

+) 극장이 아니면 온전히 보아내기 어려운 영화다. 그러니 기왕이면 극장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고문을 간접체험하고 오시길. 그럴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