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디자인인 양 크게 박혀있는 'Gold'.
아이작 아시모프의 유고집은 미출간 에세이와 단편소설을 모아 낸 SF 버전 'Gold'와 판타지 버전 'Magic'이 있다는데, 이것은 '골드'의 순서를 살짝 바꾼 번역본이란다.
처음 이 책을 선물받았을 땐 조금 실망했더랬다. 뭔가 잡탕밥같은 구성이었거든. 그래도 보다 보니 과학소설론, 과학소설창작론인 1,2부는 괴짜 할아버지의 잘난척 입담 덕에 꽤 읽혔는데, 3부인 단편소설 모음은 (원래는 소설부분이 1부에 해당) 읽히지 않아 한참을 방치해뒀다가 이번에 다시 보니 엄멈머 재밌는 거다. 그리고 말미에 길게 붙어있는 각종 해설과 연보. 이게 또 재밌다! 과학소설가 2인의 해설 탓인지 SF에 대한 애정이 정말 담뿍 느껴진다. 그리고 연보는, 이게 무슨 연보냐고, 아시모프 일대기 요약이지! ㅋㅋㅋ 이렇게 상세한 연보라니, 안 읽으려다 다 읽고 말았네.
이 책은 한마디로 SF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종합선물세트다. 말미의 해설에 연보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고 다 읽었을 때 만족감이 더 크다. 아이작 아시모프 옹이 얼마나 사랑받는 SF작가인지, 그가 활동했던 시절의 미국 SF시장과 한국의 현재 SF시장의 유사성(천대받는, 척박한 환경) 등이 전해지면서 SF소설에 대한 관심과 한국 SF소설에 대한 호기심까지 쑥 끌어올려주었다.
장르소설은 입문의 문턱이 상당히 높다. 도대체 뭣부터 읽어야할지 모르겠는 거다. 그중에서도 SF는 Big 3라는 로버트 A. 하인라인,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들이 소개나 되면 감지덕지, 그나마 나온 것도 절판 행진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8년도인가? 갑자기 SF 출간 붐이 일어서 절판이 되건말건 꾸준히 폭넓게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는 게 고무적이다..............만! 도대체 뭐부터 읽어야 하냐고??? SF의 고전이고 걸작이라고 나오는 작품들이 초보자가 접하기엔 결코 쉽지 않다고~. 과학적인 근거가 작품의 중추가 된다는 하드SF를 비롯해 스페이스 오페라니 사색소설이니 세기말이니....... 똑같이 방대해도 판타지는 한눈에 들어오는 인상-'초자연성'-이 있는 반면 SF는 알쏭달쏭 어렵기만 하다. 쥘 베른의 <해저2만리>는 알겠는데 <프랑켄슈타인>도 SF라니. 코믹 매카시의 [로드]가 미국에선 과학소설로 분류된다니. 기본적으로 과학적인 체계만 갖추고 있으면 다 SF라는데, 위키백과에 의하면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여도 <앰버 연대기>는 SF가 될 수 있다니 도무지 알쏭달쏭한 거다. 그래서 어떤 이에게는 '어려운 과학'소설이고 어떤 이에게는 황당무계한 '공상과학'소설로 여겨지는 현실. 어둡거나 말거나 스토리성이 강한 필립 K. 딕의 작품이 종종 입문작이 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단편집. <SF명예의전당>시리즈가 입문서로 꽤 좋은 듯하다. 작가진이 후덜덜, SF 황금기라 일컬어지던 시절(대충1930~1950년대)의 작가군과 작품들이니까.
그리고 SF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이 책도 참 좋다. ^^
이 책에 실린 단편들에 관해 얘기해보면.... 다소 튀는 형식(달리 말해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칼'과 '골드'는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 '환각'도. 이건 이야기로서 몰입도도 좋다. "이게 뭐야?" 싶은 2~4쪽짜리 소품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래 세계를 예측하고 그 안에서 인간과 또다른 인격체(로봇이든 외계인이든)와의 갈등을 그리고 있어 공감하기 쉽다.
과학소설 관련 에세이는 부담 없이 읽는 와중에 감탄할 수 있는 연륜과 통찰력이 곳곳에 빛난다. 해설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이걸 읽는다고 과학소설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SF가 어떻게 쓰여지는가'를 엿볼 수는 있다. 어쩔 수 없이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자네는 어떻게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나?" 라는 질문에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못해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을 때까지 생각한다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 글쓰는 기계요 죽어서 자기 별로 돌아간 외계인이라고까지 불리던 그도 다를 바 없다는 게 참 좋다. ㅎㅎ
끝으로 내가 갖고 있던 아시모프에 대한 오해 두가지.
첫째, 러시아인인데 미국으로 망명했다. ---> 틀린 말은 아닌데 아주 어릴 때 온가족이 망명한 거라 아시모프는 평생 러시아어도 할 줄 몰랐단다. 러시아계이자 유대계 '미국인'인 셈이다.
둘째, 과학자가 본업인데 엄청난 저작을 남겼다. ---> 관점의 차이가 있겠는데... 본업이 과학소설가였다. 과학자의 길보다 등단이 먼저였고 스스로 창작을 더 중히 여긴 듯, 38세엔 (교수란 직위만 유지한) 전업작가가 되었다니까..
이 내용을 어떻게 알았냐고? 말미의 연보를 보고 알았다. ^^
해설에는 간단한 과학이론도 불쑥불쑥 등장한다.
단숨에 읽을 필요도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지만, 전부 읽기를.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