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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해요~문화생활/영화

올해도 넘버링 231. 재심

by 와옹 2018. 2. 28.

2016년 / 119분
한국, 드라마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의 영화화)

각본감독  김태윤
출연  정우(이준영 변호사 역), 강하늘(조현우 역), 이동휘, 이경영, 김해숙 외


한마디로... : 살인죄로 10년을 복역한 청년의 재심을 맡게 된 속물 변호사가 의뢰인의 무죄를 믿게 되면서 검경비리에 맞서 진범 찾고 승소하기까지의.... 길기도 긴 이야기. 


이 영화에 대한 나의 한줄평.
- 너무 상업영화 같이 만들어서 재미가 없어졌다. 

감독은 영화 첫머리에 '실화를 극화'했으며 '사건, 이름 등은 허구'라고 밝혔고 엔딩에서는 '영화에 영감을 준 약촌오거리 사건'이라고 명시하며 이것이 실화의 재현이 아닌 오락적 창작물임을 분명히 했다. 바로 그때문에 "어? 생각보다 재밌네!"하고 시작한 영화는 같은 이유 탓에 중반부터 재미가 급감한다. 완성도가 괜찮아서 더 그렇다.

영화는 철저히 사건을 파헤치는 변호사와 피해자의 관점에서 그들의 분투를 그리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둘 사이의 갈등-믿네 안 믿네-과 부조리한 세상과 싸우기로 하는 심리변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는 상업적 선택을 하는데, 바로 조작 경찰을 절대악처럼 만든 뒤 속물 변호사의 영웅적 변신을 꾀한 것이다. 덕분에 영화의 클라이막스 대사는 "넌 살인범 아니야. 내가 알아." 가 되어버렸고, 물론 정우와 강하늘의 연기는 충분히 뭉클했고 클라이막스다웠지만, 그 장면을 만들기 위해 (진범의 얘기는 대폭 축소하고) 강하늘이 갑자기 복수의 칼을 휘두르고 정우의 측근이 배신하는 전개는 너무 상투적인 무리수였다. 영화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실제 사건을 덧칠하고 퇴색시킨 느낌... 중반 이후로 내내, 나는 '이건 실화가 아니잖아. 이건 그냥 다른 영화잖아'라는 불안감을 안고 봐야 했다. 진짜로 영감(모티브)만 얻었다면 과감하게 색다른 이야길 만들던가, 아니면 실화에 충실하게 재현해 내던가, 둘 중 하나를 명확히 하지 않은 아쉬움. 그게 너무 크다. 
왜냐하면 실화가 너무 드라마틱해서다. 표적수사로 누명을 쓰고 형을 살고, 심지어 수감 도중 진범이 잡혔다가 풀려나고 관련자들이 자살하고, 2일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공소시효 폐지의 혜택을 보고 재심에서 무죄를 받고...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제대로 펼치기만 해도 재미있을 텐데, 아마 감독은 '그알'에서 이미 충격적으로 다룬 사건의 진상을 다른 각도로 조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야기의 온갖 재미있는 상황들을 가지 치고 변호사의 관점에서 헤쳐나가는 것에 집중했을 거다. 하지만 이 사건이 갖는 사회적 부조리와 함의를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선 <1987> 처럼 다양한 각도로 파고드는 방식이 낫지 않았을까. 어떤 선택을 했던간에, 덜 안전하고 덜 상업적인 틀에 맞췄으면 이런 삐걱거리는 느낌은 덜했을 것 같다.

꼭 봐야할 이유는 못 찾겠지만, 그냥 배우들만 보면 볼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