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엘리자벳Elisabeth
미하일 쿤체 /각본,작사
실베스터 르베이 /음악
199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
1996년 일본 다카라즈카 가극단(雪組) 초연
이후 일본 토호에서도 공연
2012년 한국 초연 (2/9~5/31)
일시 : 2012년 3월 3일(토) 2시 공연
출연 : 류정한(토드:죽음) 옥주현(엘리자벳) 루케니
(가로줄은 원래 예매했던 캐스트. 예고도 없이 공연 당일 캐스팅이 바뀌었다.)
좌석 : 1층 7열 정중앙. / 삼성 블루스퀘어 극장
http://www.musicalelisabeth.com/main.php
*이하 스크롤 압박
[엘리자벳]을 처음 본 건 다카라즈카 星組 공연비디오였다. 97년 말이었던 것 같은데, 일본 가는 친구가 어렵게 구해다 준 거였다. ^^ 일본어 '기미(너)'와 '미기(오른쪽)'도 구분 못하던 시절, 무자막으로 본 2시간 반짜리 무대는 너무 칙칙했다. 근데 볼수록 이게 극 넘버의 활용이라던가 무대연출, 그리고 사람과 죽음 간의 삼각관계가 아주 재미있는 거지. 나중엔 거의 외울 정도로 수도 없이 보고 또 봤다. (그랬던 걸 깡그리 까먹을 수 있다니 인간의 기억력은 위대해!)
7년의 기획, 국내 초연, 새 극장, 괴상한 예매방식
여하튼, 그 정도로 좋아하는 [엘리자벳]이라 국내에서 공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귀를 쫑긋거렸다. 전문기획사가 7년을 공들여 기획했다는 것, 새로 지은 극장에서 공연한다는 것, 오디션으로 국내 최고의 배우들이 캐스팅될 것이란 것 모두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고, 드러난 캐스팅은 상당히 의외였지만 홍차양이 점심시간을 반납하며 티켓을 예매했을 때는 기뻤다.
말이 나와 말인데 1차,2차,3차... 일정 기간을 몰아서 예매하는 괴상한 방식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오죽 난감하면 엘리자벳 공연은 다 보러 다니는 해외팬들이 국내표만 자력으로 못 구했다는 소문이...-_-;; 극장에 앉은 관객들의 뒤통수를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다 승리자야." 진심으루 그런 기분이었다니까.
그랬건만.
홍차양이 애써서 고른 캐스팅이 당일 두명이나 교체되는 극악의 사태가 뙇! ㅇㅁㅇ 컥.
그래....... 장기공연이니 배우들의 사정이 생길 수 있다는 건 나도 잘 안다. 이해해야지 어떻게 해. 근데, 그렇다면 그렇게 미리 예매하지 말란 말이다!!! 루케니와 프란츠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데 그 두명을 바꿔쳐? 나는 최근 배우들을 잘 몰라서 덜했지만, 홍차양과 길양은 박은태 루케니와 민영기 프란츠가 보고 싶다고 얼마나 가슴을 치던지. 표 구하기도 불편한데 티켓값도 더럽게 비싼데(1층 전석이 R석이라니!) 고르고 골라 보고픈 배우들 공연날에 맞춰 와도 복불복이라는 기막힌 현실! 지금 장난하는 거 맞죠?
(사진은 전부 공홈에서)
극장 로비의 조공 풍경들. 쌀 이름이 드리米였다. 아예 전용브랜드가 생긴 건가?
주연배우들은 거의 쌀탑을 세웠더라. 뭐.. 준수가 압도적이긴 하지만, 엇비슷하게 전시해 놓았다. 좋은 데 쓴다곤 하는데 난 좀 싫더라. 전시할 시간에 불우이웃 주면 안 되는 거냐. 묵은 쌀 맛 없어....
매회 출연진 사진을 벽면에 배치하는데, 홍차양이 찍어놓고 보내주지 않는 바람에 ㅋㅋ 긁어온 사진에 수작업으로 표시했다.
체크 표시한 사람들이 내가 본 캐스트. (최민철 루케니 사진이 무서운데, 무대에서의 느낌은 유준상 씨랑 비슷했음.)
다행히 악명 높은 새 극장의 사각을 피해(수리했다는 말도 있고 사각 좌석은 표를 안 풀었다는 말도 있고) 정중앙의 좋은 자리에서 공연을 보게 되었다. 홍차양에게 감사의 뜻으로 사탕을 주었다. 나도 먹고 함께 본 길양에게도 주고. (감사의 뜻은 실종.)
루케니가 저승의 심판관에게 엘리자벳 암살 이유를 추궁받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시작부터 루케니가 넘 크게 대사를 해서 깜짝깜짝 놀라고.;;;
그래도 "엘리자벳-!" 이라고 외치며 이어지는 오프닝 합창은 찌르르...! 엘리자벳이다~~~하며 감격했음. ㅠㅠ
그러나 내 이럴 줄 알았다지. ㅋㅋ 합스부르크 왕가의 혼령들을 불러낸 장면에서 좀비처럼 움직일 줄 알았다고. 내 예상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연출에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오락극이 된 엘리자벳, 극의 재미를 볼거리에서 찾다 (난 반댈세)
국내 초연이라 과잉친절 콤플렉스라도 걸린 걸까? 오스트리아판 명성황후의 시시콜콜한 배경을 이해 못할까봐 노파심이 작렬한 걸까? 전체적으로 설명씬이 왕창 늘었다. 그런 설명을 최대한 줄인 다카라즈카 버전도 군더더기라 여긴 씬들이 있건만... 이건 군더더기에 군더더기를 얹어 지루할까봐 휙휙 빠르게 장면을 넘기는 요상한 연출을 택하네.
예를 들어 2막의 중요사건인 루돌프의 반란은 이 극을 역사가 아닌 드라마로 받아들이는 관객에게는 하등 필요 없는 씬이다. 드라마로서 이 씬이 필요한 이유는, 그렇게 사랑해주고 싶던 아들을 외면하게 되는 엘리자벳의 아이러니와 아들의 자살로 자신도 죽고 싶은 지경에 이르는 감정선을 위해서다. 내가 듣고 본 독일판이나 다카라즈카판에서는 이 느낌을 분명히 살린 반면, 국내판에서는 엘리자벳이 편집증으로 미쳐가는 모습이 추가돼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리얼함은 살렸을지 모르나- 이후 루돌프의 관 앞에서 오열하는 장면도 모성으로 와닿지 않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 게다가 드디어 날 데려가라는 엘리자벳을 외면하는 토드(죽음)의 심정도 오리무중. 저게 사랑인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게 만들어 놨다.
다카라즈카 버전에서는 (특성상) 토드의 장면을 대폭 강화했다. '어릴 때 죽을 뻔한 엘리자벳에게 반해 놓아주는 장면'과 '그녀를 잊지 못해 주변을 배회하는 심리', '죽는 것이 황후가 원하는 자유라는 논리', '그러나 (죽음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그녀만은 사랑해서 자신을 택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확실히 짚어준다. 토드의 사랑이 분명해지면서 엘리자벳의 살려는 의지가 더욱 부각되고, 황실의 족쇄 안에 있는 프란츠의 사랑과 영원한 자유를 상징하는 토드의 사랑이 대비되어 그녀에게 강한 연민을 갖게 했다.
이런 다카라즈카식 윤색은 오리지널이 몇몇 부분을 역수입했다고 할 만큼 매력적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감정선은 살렸어야 하지 않을까? 토드와 엘리자벳, 프란츠의 엇갈린 사랑이 중요한 포인트 아닌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식의 엘리자벳은 구구절절한 인물설명과 시각적인 볼거리 위주로 재편되었다.
오리지널을 그대로 따른 듯한 이동식 계단(?)에서 등장하는 토드나, 루케니의 사형을 암시하는 올가미, 무대에 비해 너무 커 보이는 조형물이나 독일 뮤지컬에서 즐겨 쓴다는 뒷배경에 쏘는 사진 연출 등이 그렇다. 그러나 대표적인 한국판 윤색은 마리오네트 극장 씬! 결혼 이후 아이를 낳는 족족 뺏기고 인형처럼 살아가는 엘리자벳을 마리오네트처럼 표현한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아이디어만 좋았다. 가장 의문인 건 왜 루케니가 조종하는데? 엘리자벳이 황실의 인형으로 살아가도록 그가 조종한 게 아니건만. 차라리 토드가 조종하면 모를까... (루케니가 극중 화자로 우유배급, 카페 종업원, 컵 판매원 등 온갖 장면에 출연하긴 하지만, 그것과 마리오네트 조종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 아무리 죽음의 사주로(홀려) 엘리자벳을 암살했다 해도(그 장면의 연결은 좋았다!) 루케니가 토드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양 황후와 황가의 삶을 조종하는 연출은 무리하다. 매우 무리하다.
의외로 선전한 옥엘리와 노래를 너무 조절하신 류토트
캐스팅을 고를 때 제일 처음 정한 사람이 류정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준수 꺼는 표를 아예 볼 수가 없고 송창의는 연기자 이미지만 강했으니까. 엘리자벳은, 기대감이 없을 뿐이지 옥주현 안티는 아니니까 그냥 보자 했고. 근데 막상 뚜껑을 여니 준수와 송창의, 옥주현이 호평이네!
뭐, 정말 사심 없이 말하는데, 옥주현 잘했다. 노래도 잘하고 외모도 그럭저럭(빛나지 않는 건 조명과 의상 탓도 크니까), 연기도 생각보다는 잘했다. 음, 그러나... 그러나 말이지... 엘리자벳은 소녀에서 할머니까지를 연기해야 하는 역인데, 1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린 시시를 연기할 땐 솔직히 '난 지금 어려요'를 어필하기 급급해 연기라 말하기 민망하다. (이건 김선영도 마찬가지인 듯;;) 어쩔 수 없지 뭐. 그 정도는 너그럽게 이해한다. 문제는 움직임이다. 굳이 마리오네트 씬을 넣지 않아도 될 만큼 옥주현의 평소 움직임이 차렷 자세다... ㅡㅁㅡ;;; 이건 감정이 격해지는 2막에서도 여전~해서, 격하게 노래하느라 몸을 흔드는 것이지 도저히 연기자의 액션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요 난 움직임에 민감하거등요.)
뮤지컬 배우 옥주현을 한마디로 표현한 친구 왈. "영혼이 없지." 모두 대공감했다. 영혼이 없었다.
죽음의 유혹에 시달릴만큼 감정기복이 심한 엘리자벳인데 기억나는 건 자유를 외치던 모습 하나뿐. 노래를 잘해서 찌르르했던 장면들은 있으나, 사랑도 고통도 모성의 아픔도 전해지지 않는, 참 잘하는데 영혼이 없는 연기엔 그냥 무덤덤했다.
그런데 이건 류정한 토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공연은 어떤지 몰라도 [엘리자벳]에서의 류정한은 그냥 가수였다. 열심히 노래하고 끝이다. 강약조절은 얼마나 잘하시는지, 감정선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리고 정말 황당하게도, 이 공연의 배우들이 다 그렇다. (상연 한달 쯤 됐을 때인데)도대체 앙상블이란 게 없다. 그냥 다 독창 가수다.
[엘리자벳]의 훌륭한 넘버들 가운데는 대화를 주고받는 듀엣이나 합창이 많다. 평소 대사도 노래에 가까운 레시타티브고.
그런데 이 배우고 저 배우고 다 자기들 노래만 했지 조화라는 게 전혀 없어 몇장면은 정말 소음이었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넘버 '밀크'는 힘있는 합창인데, 시끄럽게 우유통을 깡깡거리는 바람에 눈살이 다 찌푸려졌다. 서로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지도 않는다. 가사따윈 중요하지 않다고 서로 멜로디 가창 경쟁을 하는 것 같다. 극을 통틀어 상대방과 대화하듯 노래한 배우는 오직 하나, 루돌프 역의 전동석이었다.
이 배우, 전군.
청년 루돌프는 극이 한참 무르익은 2막 중간에 등장해 극을 더욱 고조시켜야 하는 어려운 역이고
20분 남짓한 짧은 등장에 희노애락이 지나가는 강렬한 역이다. 짧은 시간 내에 정치적인 신념과 좌절, 엄마를 향한 사랑과 상실감을 연기해야 한다. 더구나 결말은 죽음. 어려운 감정선을 잘 살려서 루돌프가 나오는 동안만 온전히 감정이입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찡했다. 차분한 분위기에 대사 전달도 아주 좋고, 루돌프가 합류한 노래는 대부분 내용이 잘 들렸다. 상대방에 제대로 맞추면서 제몫을 하는 모습이 엄지 번쩍! 그래, 이런게 뮤지컬이지.
아 좀 지친다. 배우 한줄평이나 해보자~.
류토드 - 너무 쿨하셔. 스토킹이든 사랑이든 엘리자벳을 집요하게 따라다녀야 하는데, 쏘쿨~. 노래도 연기도 쏘쿨~.
옥엘리 - 영혼이 없는 걸 어쩌라고. 그래도 류토드 보단 좋았다;;
최루케 - 오래 부르면 목소리가 작아졌다가 쉬고 나오면 다시 쩌렁쩌렁해지는 성대;;;; 얼굴도 연기도 유준상 닮았음.
윤요젶 - 약했음. 임호 닮은 마스크. ㅋ
전루돒 - 짝짝짝.
이소피 - 특유의 어조가 거슬리는 것 빼곤 카리스마 있었음.
흑천사들 - 기왕이면 댄서로 구성해달라! 근육질로 허부적허부적.
뒤늦게 변명을 좀 해주자면, 더블에 트리플 캐스트이다보니 누구와 호흡을 맞추냐에 따라 감정이나 연기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주요 배역이 루돌프를 빼도 다섯명인데 곱하기 2만 해도.... 후덜덜. 차라리 난타처럼 팀을 나눠서 하는 게 낫겠다.
아래는 유명한 장면들에 대한 간략 감상. 안 읽어도 되요~.
정리해서 평하자면, 은근한 비유와 상징이 전부 말로 설명되고 장면전환을 빠르게 한 탓에 감정선이 실종한 오락극.
갈라콘서트 같은 느낌이었다. 갈라 콘서트가 더 좋은 장면도 있으니... 으음.
공연 자체가 영혼이 없는 느낌. 훌륭한 악기의 향연 같은?
그러나... 그래도 오리지널이 워낙 좋아서, 이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면 무난하게 좋을 것 같다.
난... 준수 꺼 보고 싶어 준수 꺼~ 샤토드가 그렇게 잘했다며!? 으헝헝헝.
관극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