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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해요~문화생활/영화

올해도 넘버링 232. 동주

by 와옹 2018. 2. 28.

2015년 / 110분
한국, 드라마

각본제작  신연식 (2016 부일영화상 각본상 수상작)
감독  이준익
출연  강하늘(윤동주 역), 박정민(송몽규 역) 외 다수 + 최희서, 문성근


한마디로... : 청년 동주의 눈높이로 따라간 망국이라는 시대의 아픔. 
(줄거리로 말하면, 옥중 자백을 강요당하는 과정에서 회고하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 정도?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줄거리를 넘나도 잘 섞은 대본이 참 훌륭하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각본상)


세상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쉽게 써져 부끄럽다는 청년 윤동주.
우리가 피상적으로 아는 저항시인이라는 이미지완 다른, 한없이 여리고 고뇌하고 부끄러워하는 청년-미등단 시인- 윤동주를 그린 영화다. 심지어 잘 몰랐던 사촌이자 벗 송몽규에 대한 우정과 열등감까지... (얼만큼 진실인지는 살펴봐야 알겠지만, 말미에 참고서적도 나열한 걸 보면 생뚱맞은 창작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강하늘의 주연작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연달아 보니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된다. 미안하지만 <재심>에서 느꼈던 어정쩡함과 달리, <동주>는 너무나 아름답게 시인의 숨결을 살려낸 느낌이다. 나는 윤동주 시인의 삶을 모르지만, 그의 시와 삶을 연결시켜 보려 하고(중간중간 시가 나레이션으로 깔림) 그의 인생을 절묘하게 풀어낸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느꼈다. 

개봉 당시 동주보다 주목받았던 송몽규란 인물은, 천재시인 윤동주를 오징어 만드는 낯선 존재가 주는 충격과 더 낯선 신인배우의 안정적인 연기가 더해져 그야말로 '발굴'이라 할 만한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미 '박정민의 역할'에 대한 평판을 익히 알고 본 내게는 동주가 더 좋았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윤동주는 내가 거의 유일하게 좋아한 시인이다. (사실은 이육사와 몇분이 더 있긴 하다 ㅋ 그치만 읽을 때마다 가슴 두근거린 내 마음의 넘버원은 윤동주) 청소년기의 감수성에 콕 박힌 강렬함 때문인지, 그냥 마냥 윤동주가 좋다. 영화와 상관없이 이미 정음사의 초판 복간판 시집을 샀는데, 인쇄 상태가 심히 고풍스러워 군데군데 박히 한자를 빼더라도 가독성이 좋지 않다. 윤동주 정본 시집인가 그런 게 있었는데 나중에 내게 선물해줘야지... 상관없는 얘기고... - - ; 

동주가 시대를 슬퍼해본 적 없는 자신을 부끄러워할 동안, 독립운동에 몸 담았던 몽규는 실제로 거사를 일으키지 못한 것을 뼈아파 했다. 그런 모습은 박열과 닮았고, 이준익 감독이 차기작으로 <박열>을 택한 건 몽규의 이야기를 완결짓는 느낌으로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싶다. 안타깝게도 <박열>을 먼저 본 내게 그 영화는 많이 아쉬웠지만.
시대를 바꾸려 했던 젊은 투사 몽규와 그런 시대에 시인이 되려 해서 아팠던 동주의 이야기. 
그 두 남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각본과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정지용 시인 역으로 특별출연한 문성근 배우는 오랜만에 좋은 연기를 보였고, 여기서도 일본인으로 출연한 최희서와 김인우 배우(<박열>에서의 그 재무대신인가 나쁜넘 역 한 재일교포)도 참 좋았다. 

개취 더해서 강추!


+) 윤동주 시집 다시 읽는데 극중 여대생의 말처럼 '좋은데 쓸쓸하다'. 얼마나 정제하고 꼭꼭 숨겼기에 시어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하고 쉬이 읽히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시의 행간에서 읽히는 건 무력하고 나약하고 비겁한 지식인이 아니라, 순수해서 시대를 온몸으로 아파하는 청년 시인이다. 살아있었다면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적어도 그의 일생은 한없이 맑았을 것만 같다. (...그래요 팬심♡)

++) 강하늘의 선택은 참 성실한 것 같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대한 멀리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느낌. 늘 안정적인데 늘 뭔가를 시도한다. 파격적이진 않지만 매번 다른 옷을 그럴싸하게 입는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될지, 흥미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