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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해요~문화생활/영화

올해도 넘버링 227. 1987

by 와옹 2018. 2. 12.

2017년 / 129분
한국, 드라마

각본  김경찬 (<카트>로 시나리오 상 받은 분이구나...)
감독  장준환
출연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설경구 + 강동원, 여진구 외 다수 정말 다수!


한마디로... : 박종철 고문치사를 밝히려는, 저지하려는 두 세력과, 이한열로 대표되는 민중의 함성까지 1987년의 긴박했던 진실 투쟁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신문을 열심히 읽었던 시절이 초등학생 때, 그러니까 저 무렵이다. 
그런데도 나는 5.18을 폭동으로 알았고 입조심하는 부모님들 아래서 정권의 험한 상상은 하지도 못한 초딩이었다. 
그런 우리 부모님 입에서 "나쁜 놈들"이라는 험한 말을 나오게 한 게 바로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었다고 기억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보수적인 소시민까지 분노케 한, 그래서 민주화의 열망을 불태우게 한 상징적인 사건. 그 진상이 공표되기까지의 긴박했던 물밑상황을 재현해낸 영화가 <1987>이다. 

우선, 일관된 주인공이라곤 악역(김윤석이 분한 박처장) 하나 밖에 없는 사건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각본의 솜씨가 빼어나다. 이한열(강동원) 열사와 교도관(유해진) 가족(김태리)을 중심으로 적당한 허구를 섞어 그 당시 시민들의 마음에 감정이입하게 한다. 남영동 대공수사처와 경찰, 검찰의 알력관계, 사건의 목격자가 된 의사들과 교도관들, 기자와 시민운동가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그리고 대학생들의 저마다의 분투가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이루어 '그날'에 이르게 하는 매끄러운 스토리텔링은 경탄스럽다. 
그런데... 재미는 좀 없었다. 기대에 못 미쳤다고 할까. 내가 예상한 그런 에너지, 그런 그림이 끝까지 나오지 않더라..
특히나 촛불혁명과 연결지어 홍보한 민주화의 열망, 민중의 힘... 그런 부분이 아쉬웠다. 
"뭐라도 해야 했던" 대학생들의 마음만은 강동원에서 김태리로 이어지며 잘 전달되었지만, 어린 내가 느꼈던 그날의 에너지는 반도 표현되지 않는 느낌... 영화 속 시민 중에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일까? 인물들은 모두 직업적으로 관련자이거나, 또는 가족들이 깊게 개입돼 있어서 일반 대중이라 하기엔 피해자와 투사의 느낌이 강하다. 미팅 나갔다 데모 진압에 휩쓸리고, 대학생들이 광주사태 영상을 보고 충격받는 장면 정도가 일반적인 민중의 감각이었을 거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진상 발표나 기자들의 몸 바친 특종을 대하는 대중의 반응을 보여줬더라면 그런 공감대가 더 형성됐을까? 스토리는 드러나는 진상과 막으려는 악당 위주로 흘러가, 이것이 어떤 국민적 공분을 이끌어냈는지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동참했으며 국민적 성취는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어쩌면 그건.. 전두환 하야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도 또다시 군부의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아버린 씁쓸한 역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홍보의 포인트를 촛불혁명에 맞춘 게 잘못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아쉬웠다는 것이 나의 감상. 하지만 그 외의 것들, 출연배우들의 묵직한 열연이나 생생한 현장감, 역사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가는 긴박한 전개 등등은 훌륭하다. 단지 재미가 덜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한산성>이나 <박열>과 한핏줄 영화라 하겠다. 그 영화들을 감동적으로 본 분들이라면 나보다 감수성이 높은 분들일 테니 아마 이 영화도 충분히 만족하실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