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드 <노부나가 콘체르토>와 일본 만화 원작인 <라이어 게임>(역시 일본 만화가 원작인 <내일도 칸타빌레>는 보다 던졌고...;;;), 그리고 한국 만화 원작인 <미생>을 챙겨보는 중이다.
셋 다 전체의 30%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현재 스코어는 미생>>>라이어>노부나가.
<노부나가~>는 엄청난 캐스팅으로 대작을 기대케 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대단한 배우들 다 게스트 출연이고 내용은 상상을 초월하게 가벼운 드라마였다. 설득력이 필요한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시종일관 시시한 개그로 끌어가는 타임슬립 역사물은 좀...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하지만 기대를 전부 포기하고 보면 매회 어떻게 역사대로 될까 궁금하기는 하다. 원작을 본 사람들이 더 재미없을 것 같다.
TV쇼가 분명 좀더 받아들이기 쉽고 이로 인해 새로운 재미가 발생하는 설정인 건 사실이지만, 구속력이 약하다는 점에서 무작정(반강제로) 게임에 던져진 원작의 쉽고 빠른 긴장감을 대거 놓치고 말았다. 2화를 상당히 재밌게 풀어서 이후를 기대했는데 (본격적으로 게임을 하는) 3-4화의 긴장감이 일드만 못한데다 어렵기까지 하다. 게임 룰은 물론이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도 뭐가 어떻다는 건지 단박에 이해되지 않아서, 돈 못 따면 가공할 빚더미에 깔리니 이판사판 덤비는 일드에 비해 뭐가 구구절절하다. 회를 거듭할 수록 게임(TV쇼)의 구속력과 절박함을 어떻게 배가시킬 것이냐가 관건이겠다.
시리즈를 거치며 하나씩 과거도 밝혀지고 게임의 정체도 밝혀졌던 일드와 달리 한드는 그것을 초반부터 친절하게 설명하며 풀어가고 있는데, 감정이입은 쉬운 대신 신비감과 궁금증은 많이 떨어진다.
한마디로 말하면 원작에서 바꾼 설정이 괜찮으나 더 효과적이진 못하다는 것, 이게 앞으로 풀어갈 숙제 같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일드에 비해 낫지만, 일드에 비해 나은 정도고... 매력을 느끼기엔 여러모로 아직 불안하다. 그냥 다 떠나서, 게임의 긴장감만 잘 살려줬으면 좋겠다. 하나도 긴장 안돼.
<미생>은 위의 두 드라마에 비하면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괜찮은 드라마다. (사진 크기 다른 걸 보시라)
나도 무척 즐겁게 보고 있지만, 아쉽게도 4화 PT 씬부터 원작만 못하다는 인상을 내리 받고 있다.
가장 큰 불만은 바둑을 오래 해서 애늙은이 같기도 한 독특한 주관을 가진 장그래라는 캐릭터가
그냥 능력 태부족의 미운오리새끼처럼 그려지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직장에서 계약직 신입사원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 거의 없고 고졸에 바둑 스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능력이라 해도, 장그래의 매력은 그 독특한 '바둑의 세계관'으로 잘난 선배와 동료들을 깜짝 놀라게하는 모습에 있지 않아...? (그러다 자신의 미숙함을 느끼는 게 또 묘미고!)
6화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에피가 나왔고 만화와 비슷하게 처리했는데 그때의 짜릿함은 느낄 수 없었다. 무릎을 쳤던 장그래의 반격(?)은 잠깐의 재치에 그쳤고, 그래서 뛰는 장그래 위에 나는 박대리의 느낌이었던 원작과 달리 드라마는 현실이 그들을 압도할 뿐이었다. 장그래는 매회 자신만의 (바둑의) 눈으로 세상에 부딪치고 그 이상의 현실을 배워나가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부족했고 여전히 부족한 자신을 재확인하며 끝난다. 극 후반에 가서 이랬던 신입이 일취월장하면 그것도 판타지이겠지만, 난 또 그건 반대라....ㅠ.ㅠ
그간의 그후의 애타는 노력을 다 빼먹은, 어리숙하기만 한 장그래는 좀 아쉽다.
반면 한결 두루뭉술해진 오상식 과장의 캐릭터 변화는 원작보다 더 좋다고 느끼는 부분이었는데, 6회의 친구 접대 에피소드를 보면서 처음으로 융통성 없는 만화속 오과장이 그리워졌다.
장그래와 오과장은 신입사원과 중간관리자의 판타지 같은 캐릭터인데..
선차장과 오과장에 안영이까지! 줄창 당하기만 하는 5-6회를 보면서 답답했다는 반응들이 적잖은 걸 보면,
<미생>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건 현실적인 디테일 속 판타지가 아닐까 싶다.
부하의 억울함을 알아채고 '우리 애'를 감싸주던 상사의 판타지,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것도(바둑으로 다져진) 훌륭한 스펙임을 보여준 PT씬의 판타지 등등.
난 이러다 장그래가 만능 사원이 되는 직장 성공기도 별로지만,
판타지가 실종된 갑갑한 현실 다큐도 보고 싶진 않다. 아무리 잘 표현해도 현실만 못하니까... 답 없는 현실을 리얼하게 그려봐야 그 끝은 뻔한 보수의 논리뿐이니까... (안분지족, 각자의 자리에서 좀더 노력.)
벌써부터 갑이 좋아할 드라마라는 말도 나오는데, 나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가끔 있어서 아쉽다.
이런저런 아쉬움에도 <미생>은 연기자들의 합이 좋아 계속 보고 싶어지는 드라마다.
그러니까 매주 기다리며 볼 거다. 쭈-욱.
하지만 열혈 성공기로 변하면 그땐 욱...;;;; (1회의 요르단 추격씬이 불안하다고~ 장그래가 너무 능력자 같이 보여서.)
부디 드라마만의 판타지를 잘 만들어냈으면 한다.
+)
근데 사실 내가 미생을 좋아하는 건 그 어떤 정서 때문인 것 같다.
스토리는 분명 내 기대와 달라 실망스러운데 열심히 보니 말이야.
때로는 흠잡을 데 없는 만듦새보다 사람을 더 잡아끄는 무엇이 있는 것 같다. 그 뭔가는 제대로 대접받고 있을까? 적어도 만드는 쪽에서는 전혀 전혀 아니다. 공산품같이 훌륭하게 이야기를 '구축'하는 것은 이제 유행을 넘어 검열의 수준이니. 우리는 언제부터 남보다 조금 더 잘하려고 기를 쓰게 된 걸까. 이야기에서조차 남과 다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환영받다니, 이것 참....